계운궁 복제론(啓運宮 服制論)
계운궁이 사망하기 직전 삼정승인 이원익(李元翼)·윤방(尹昉)·신흠(申欽) 등이 논의를 주도하여 삼년복에서 강복(降服)하여 부장기(不杖期)로 정하였다. 이 논의는 앞서 즉위 초 김장생이 제기했던 논점을 따른 것이었다. 인조가 혈연적으로는 선조와 조(祖)-손(孫)의 관계이지만 왕통으로 본다면 부(父)-자(子)의 관계가 되므로 사친에 대해서는 강등하여 기년복을 입어야 하고 당연히 상주가 될 수 없으므로 지팡이를 짚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조 역시 초기에는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최명길(崔鳴吉)과 이귀(李貴) 등이 이원익 등의 논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 왕통을 계승했다는 이유로 생부의 상복을 낮출 수는 없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또한 앞서 대원군을 ‘고’라 칭할 때 동의했던 대신들이 계운궁 복제에서는 입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