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현(張斗鉉)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동경지방이재조선인구제회 발기인 겸 회계를 맡았으며, 1924년 조선척후단 조선총연맹 발기회 이사로 활동했다. 이밖에도 1924년 반일운동 배척과 일선융화 단체인 동민회 평의원, 조선일보 고문, 흥일사 사장, 흥업구락부 창립회원, 경성융흥주식회사 이사, 부평수리조합 평의원, 중앙유치원 원장, 조선물산장려회 경성지회 이사, 조선어사전편찬회 발기인, 조선비행학교 창립위원, 중앙보육학교 설립, 조선박람회 경성협찬회 참여, 경성상공협회 상담역, 조선취인소 감사, 조선증권금융주식회사 설립발기인, 조선소작령제정촉진회 위원, 시중회 평의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1938년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되었다. 1938년 11월 21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