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전 ()

불교
문헌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승려 한용운이 불교경전에서 인용구를 선별하여 1914년에 저술한 교리서. 불교교리서.
정의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승려 한용운이 불교경전에서 인용구를 선별하여 1914년에 저술한 교리서. 불교교리서.
편찬/발간 경위

한용운은 대중교화를 위한 포교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강조해 왔다.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1910)에서는 별도로 포교항목을 설정하여 논설하였고, 그 밖에 여러 글을 통해 일관되게 포교의 혁신을 주장한 바 있다. 만해는 역경의 필요성을 ‘경전의 민중화’로 표현하였으며, ‘문자로의 선포’라고 하였다. 『불교대전』은 이러한 만해의 대중교화, 포교, 역경에 대한 사상과 실천의식 속에서 탄생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서지적 사항

한용운이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1914년 직접 고려대장경과 범어, 팔리어 경전 등 400여 개가 넘는 경전에서 총 1,740여 개에 달하는 인용구를 가려 뽑아 만든 책이다. 한용운은 간추린 인용구들을 총 9품(品), 32장(章), 36절(節)로 분류하여 수록하였다. 그는 『불교대전』을 편찬하기 위해, 『조선불교유신론』을 탈고한 후인 1912년부터 양산 통도사에 비치된 고려대장경 1,511부 6,802권을 일일이 열람하여 그 가운데 1천여 부의 경률론(經律論)으로부터 발췌하여 기록하였다. 고려대장경 열람 및 초출(抄出) 작업에 적어도 1년 이상의 기간을 보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이 승가의 개혁에 초점을 두었다면, 『불교대전』은 재가신도를 위한 불교교리 및 불교사상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이는 『불교대전』의 목차에 ‘가정(家庭)’이나 ‘사제(師弟)’, ‘타인(他人)’ 등의 항목이 주제로 포함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한용운은 각 품과 품에 속한 장, 절의 주제에 적합한 내용의 불교경전 구절들을 인용하였다.

『불교대전』은 대략 430여 종 내외의 경전 이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 가운데 20여 차례 이상 인용된 경전으로 『화엄경』, 『열반경』, 『아함경』, 『법구경』, 『제법집요경』, 『대승기신론』, 『출요경』, 『심지관경』, 『대방등대집경』, 『대승보살장정법경』, 『사십이장경』, 『유마경』이 있다. 특히 『화엄경』의 인용 횟수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열반경』이 그 뒤를 잇는다. 이 점 역시 만해의 불교사상과 관련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화엄경』과 『열반경』 이외 경전 가운데 『유마경』에 대한 만해의 특별한 관심 또한 눈여겨 볼 대목이다. 결국 『불교대전』은 만해사상에 의해 구성되고, 그 내용이 첨삭된 만해만의 불교사상 체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내용

한용운은 독립운동가·승려·시인으로서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호는 만해(萬海·卍海)이다. 충청도 홍성 출생으로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갑오농민전쟁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1905년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한 후 일본에 가서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9년에는 3·1운동에 참여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후,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2∼23년 민립대학 설립운동과 물산장려운동 등의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1924년 조선불교청년회 회장에 취임했고,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지만,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 활동을 계속하다가 1944년 서울 성북동에서 중풍으로 죽었다. 저서로는 『불교대전』을 비롯하여 『님의 침묵』, 『조선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

총 9품으로 구성된 『불교대전』은 만해의 불교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이다. 9품은 서품, 교리강령품, 불타품, 신앙품, 업연품(業緣品), 자치품(自治品), 대치품(對治品), 포교품, 구경품(究竟品)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6품인 자치품과 7품인 대치품은 『불교대전』에 담겨있는 만해의 사상을 대표하는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두 개의 품에 인용된 경전 수가 총 1,027개로 전체의 59% 정도에 달하여 만해가 6품과 7품의 구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6품과 7품은 구체적인 수행의 내용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자세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만해가 불교의 대중화, 불교의 현대화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자치품과 대치품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의의와 평가

『불교대전』은 팔만대장경 전체를 비교·검토하면서 정독했을 것이며, 그 당시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어려운 불교경전의 세계를 정돈된 틀에 따라 재구성해 놓은 체계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이 때문에 조명기는 『불교대전』을 ‘팔만대장경의 축소판’이라고 규정하였다. 또한 『불교대전』은 만해 한용운의 신념인 ‘대중불교’의 실현을 위한 초석이라 할 수 있다. 즉 만해의 『불교대전』은 모든 경전을 일정한 관점에서 해부하고 거기에서 주옥(珠玉)을 다시 수습하여, 자신이 제창한 불교의 혁신사상에 따라 당대인의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만해는 국한문을 혼용하되, 국문의 경우 가능하면 당시 통용되는 언어 위주로 사용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1910년대에 순한문체로 된 저서가 적지 않음을 고려해 본다면, 이것 역시 대중불교 지향적인 만해의 세계가 반영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불교대전』(한용운, 범어사, 1914)
「한용운의 『불교대전』과 난조분유·마에다 에운의 『불교성전』의 비교연구: 구조의 차이와 인용 경전의 특징을 중심으로」(송현주, 『불교연구』43, 2015)
「만해 한용운의 저서와 불교사상」(『한용운전집』3, 신구문화사, 1973)
집필자
오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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