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가야(金官加耶)에 관한 기록인<가락국기 駕洛國記>에는 가실왕의 이름이 보이지 아니하므로 금관가야를 제외한 다른 가야국의 왕이었다고 생각되는데, 대가야(大加耶)의 왕이라는 견해, 또는 아라가야(阿羅加耶)의 왕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는 가실왕은 곧 금관가야의 취희왕(吹希王)이라는 견해도 있다. 당나라의 악기 쟁(箏)을 보고 열두달의 악률(樂律)을 형상하는 십이현금(十二弦琴), 곧 가야금(加耶琴)을 만들었다. 또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르므로 성음(聲音) 또한 일정하게 할 수 없다고 하여 악사(樂師) 우륵(于勒)에게 명하여 십이곡을 만들게 하였다.
이때 우륵이 지은 열두곡은 <하가라도 下加羅都> · <상가라도 上加羅都> · <보기 寶伎> · <달이 達已> · <사물 思物> · <물혜 勿慧> · <하기물 下奇物> · <사자기 師子伎> · <거열 居烈> · <사팔혜 沙八兮> · <이혁 爾혁> · <상기물 上奇物> 등이었다.
가야가 망하게 되자 우륵은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투항하였는데, 신라의 진흥왕은 그를 국원(國原 : 지금의 忠州)에 두고 가야의 음악을 계승케 하였다. 우륵과의 관계를 보면 가실왕은 신라 진흥왕과 같은 시기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