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성재(誠齋). 강욱(姜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안중(姜安重)이고, 아버지는 현감 강관(姜琯)이며, 어머니는 곡부공씨(曲阜孔氏)이다.
1532년(중종 2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그 이듬해 예문관에 들어갔다. 1541년부터 성균관전적 ·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고, 1544년 지평으로서 상계를 제때 잘하지 못한다 하여 체직되었고, 나중에 이조정랑에 제수되었다.
1546(명종 1) 승문원교리 · 사섬시첨정 · 한성부서윤 · 봉상시첨정을 거쳐, 1547년에 사간원헌납이 되었다. 그뒤 전적 · 소격서령 · 예빈시첨정 · 군기시부정을 역임한 뒤 순천도호부사로 전임되었다.
1549년 홍문관부수찬으로 다시 기용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으며, 1551년 밀양도호부사 겸 대구진병마첨절제사로 보임되어 이듬해 재직 중에 죽었다. 강응태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주위 사람들로부터 순후장자(醇厚長者)라는 칭송을 받았다. 진주의 임천서원(臨川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