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는 441.7㎞이고 우리나라의 양대 도시인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연결하고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를 경유하는 한국 철도의 중추 간선노선이다. 장항선·충북선·호남선 등과 접속되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1901년 8월 20일에 서울 영등포에서, 같은 해 9월 21일에 부산 초량에서 일본 자본의 회사인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기공되어 4년 후인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었다. 1905년 1월 1일을 기하여 전선(全線)의 영업이 개시되었다. 그 해 5월 25일에 서울 남대문 정거장(지금의 서울역) 광장에서 개통식이 거행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경인선(1899년 9월 18일 개통)에 이은 두 번째의 철도 개통이었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체제 구축이 철도 부설 및 채광권 획득에서 비롯되었던 많은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부선의 부설은 일제의 우리나라 침략 정책 수행의 구체적 발판이었다.
1894년 ‘한일잠정합동조관(韓日暫定合同條款)’으로 경부선 철도 건설에 관한 문제가 조약 문서상에 나타나고, 1898년 ‘경부철도합동조약(京釜鐵道合同條約)’으로 경부철도의 부설권이 일본인 회사에 강압적으로 특허되기까지 일제는 민간인을 앞세워 비밀리에 그 기초 공작을 진행하였다.
즉 일본인 마쓰다(松田行藏) 등은 1885년(고종 22)에 내한하여 4년에 걸쳐 전 국토를 돌아다니며 지세·교통·민정 및 경제 상황을 은밀히 조사하였다. 이어 내한한 일본인 철도기사 고노(河野天端) 등도 당시 부산 주재 일본 총영사 무로다(室田義文)의 비호 아래 사냥꾼으로 가장하고 서울∼부산 간 철도 부설 예상 지역을 면밀히 답사한 뒤 측량 도면과 함께 보고서를 작성하여 1892년에 본국 정부에 제출하였다.
원래 서울∼부산 간에는 동로·중로·서로의 3개 도로를 비롯하여, 전라가도·경상가도·삼남가도 등의 교통로가 있어 처음 노선 계획의 기준이 되었으나, 이들 중 어느 한 도로를 따라 건설하는 것은 지세 등의 제약 조건 때문에 어려웠고,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제적 조건을 중시한 데다 경쟁 철도의 출현을 피한다는 입장에서 서울에서 충청도를 거쳐 부산에 이르는 절충 노선을 택하게 되었다.
공사의 진행은 우리나라 관민의 저항과 반대, 용지매수 분쟁, 결빙과 홍수 및 화폐의 차이 등으로 많은 난관에 부딪쳐, 1902년 말까지 북부에서는 51.5㎞, 남부에서는 53.1㎞만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이 임박하자 일제는 군사상의 필요에 따라 공사를 서둘러 강행하였고, 그 결과 졸속공사를 면할 수 없었다.
경부선이 개통되자 같은 해 9월 11일에는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關)를 연결하는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을 매체로 경부철도와 일본철도를 연결하는 연대 운수가 개시되었다. 또한 같은 해 11월 10일에는 경부철도와 군용철도인 경의선(서울 용산∼신의주간)의 연락 운행이 시작되었고, 11월 11일에는 군용철도 마산포선이 개통되어 영업을 개시함으로써 군용 철도 시대의 막을 열게 되었다.
경부선의 개통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국토의 공간 거리가 시간적으로 크게 단축되었으며 이것은 그 뒤의 국토 발전에 하나의 큰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러나 그 근본 목적은 일제의 우리나라 침략 수탈 정책을 뒷받침하고, 이어 1905년 4월 28일 개통된 경의선과 함께 대륙 진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어서 결국 경부선의 개통은 그 길을 닦은 셈이 되었다.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이 본격화된 뒤에는 수송량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에 따라 일제는 그 동안의 시설 보수에서 한 걸음 나아가 1936년에 경부선 복선 공사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대전∼영등포 간의 복선 공사는 1939년에, 부산진∼삼랑진 간은 1940년에 완공되었고, 삼랑진∼대전 간 복선은 1940년 공사에 착수하여 더욱 치열해진 전쟁 중인 1944년 10월에 준공되었다.
수원∼천안간의 복복선화와 전철화가 진행되어 2003년 4월에는 수원∼병점 구간이 1차 개통하였고, 2005년 1월에는 병점∼천안간이 복복선화되어 천안까지 통근형 전동차의 운행범위가 확대되었다. 이와 함께 기존의 서울∼수원 간 직통열차가 서울(용산)∼천안 간 급행열차로 바뀌어 서울역과 천안역을 86분에 이어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구간 전철화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광복 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경부선은 격동을 겪었으며, 뒤이은 사회·경제적 발전에 유통의 대동맥 구실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한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선은 곳곳의 도시에서 간선 및 지선철도의 형태로 주요 산업단지와 공업단지를 연결하고,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꾀하고 있다.
경부선 KTX·경부선·호남선·전라선·장항선 새마을호·누리로·무궁화호 및 광역 철도가 이 노선을 사용하여 운행한다. 또한, 천안 이남으로는 충북선·중앙/동해남부선·경전선·경북선 열차도 이 노선의 일부 구간을 공유하고 있다.
모든 철도교통량이 모여들기 때문에 한국 철도 내에서 최대의 교통량을 처리하는 용산∼시흥 구간은 2005년 기준으로 하행선의 경우 주당 일반열차 1,102편, 수도권전철 전동열차 36편이 통과해 총 1,144편이 통과하는 막대한 교통량을 처리하고 있다. 이를 용산역에서 열차가 출발한 시간으로 나누면 시격은 약 6.8분에 불과하다.
89개의 역을 보유하고 있는 경부선은 2008년 기준으로 여객수송실적은 7,069만 6,185명이다. 그 가운데 경부고속철도를 이용한 승객은 2,978만 7,617명이고, 새마을호를 이용한 승객은 733만 2,859명이다. 무궁화호를 이용한 승객은 3,357만 5,709명이다. 경부선 광역전철 이용승객은 2009년에 2억 5,830만 6,350명이었다. 한편 화물수송실적은 466만 6,215톤이며, 화물의 대부분은 컨테이너로서 436만 7,538톤을 수송하였다.
경부선은 서울에서 경인선·경의선·경춘선·경원선·용산선·서울교외선·중앙선·망우선 및 수도권 지하철 등 주요 본선 및 지선과 연결되는 한편, 천안에서는 장항선, 조치원에서는 충북선, 대전에서는 호남선, 김천에서는 경북선, 대구에서는 대구선, 삼랑진에서는 경전선, 그리고 부산에서는 동해남부선과 연결된다.
이리하여 경부선은 1970년 개통된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전국의 대소 도시와 주요 경제 지역을 연결하는 육로 교통망의 중추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