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

개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9년간의 국민 기초교육을 바탕으로 실시되는 후기 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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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9년간의 국민 기초교육을 바탕으로 실시되는 후기 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기관.
개설

후기 중등교육과 관련한 제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형 단선형 학제(single ladder system)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후기 중등교육 제도는 비교적 단순한 반면, 유럽형 복선형 학제(dual system)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후기 중등교육 제도는 매우 복잡한 편이다. 복선형 학제는 한 사회에 두 개의 상이한 학교제도가 병존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한 교육체계를 말한다.

이 제도는 원래 학교교육을 통해 불평등한 신분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영국이 그 대표적인 나라이다. 귀족이나 상류계층은 초등학교 단계부터 장기적으로 인문 교양교육을 받은 후 명문대학에 진학하여 사회의 지도층이 되도록 교육받는 반면 평민들은 중등 단계에서 실업학교나 기술학교를 나온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실무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랜 동안 봉건적 신분 제도를 유지해 왔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이런 복선형 학제를 널리 채택하고 있다. 반면에 단선형 학제는 신분의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이 동일한 형태의 보편교육을 받은 후, 능력에 따라, 그리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보장된 교육제도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이러한 구분이 비교적 엄격하였으나 이후에는 시대적 변화, 국가사회적 요청을 반영하여 기회균등을 확대한 복선형 학제, 중등교육의 다양성을 확대한 단선형 학제 등이 등장함으로써 학제의 인위적 구분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독일의 경우 종래의 복선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등 교육 단계에서의 학교 계통을 계급적, 신분적 계통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기초를 둔 계통으로 바꾸었다. 또한 계통간의 전환이 가능하도록 개방적인 학제를 운영하고 있다. 즉, 복선형 학제를 기반으로 하는 독일에서는 모든 종류의 학교가 평준화되어 있으므로 학생들이 개인의 판단에 따라 횡적 및 종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에는 유럽식 교육전통을 수용하여 복선형 학제를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후기 중등교육제도가 매우 다양하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미군정의 영향 하에서 단선형 학제로의 전환을 추진하였고, 1949년에 공포된 「교육법」에서 6-3-3-4 단선형 학제를 기본 학제로 채택함으로써 후기 중등교육은 고등교육을 받기 직전 3년 간, 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단일화되었다. 그러나 후기 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고등학교의 종류가 인문계와 실업계로 분화되어 있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완전한 단선형 학제였다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현재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강조하는 평준화를 기반으로 하되 일반고등학교, 특수목적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 자율고등학교 등 네 가지 유형의 다양한 고등학교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각각의 학교 유형에 따라 입학전형, 교육과정, 학교운영 방식 등에서 다양성이 폭 넓게 인정되고 있다.

변천

1899년에 「중학교관제」가 공포되어 중학교의 수업연한을 7년으로 정하고, 심상과 4년, 고등과 3년 과정을 두기로 하였으나 실제로 고등과를 설치한 학교는 없었다. 1906년에 「고등학교령」이 공포되어 종래의 중학교를 고등학교로 개편하고 본과 4년에 1년제의 예과와 보습과를 두도록 하였다. 이어 1908년에는 「고등여학교령」을 공포하여 본과 수업연한은 3년, 그리고 예과와 기예과를 2년 이내로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일제강점기의 고등학교

1911년 일제가 공포한 제1차 「조선교육령」에 따라 고등학교와 고등여학교는 고등보통학교와 여자고등보통학교로 변경되었으며 수업연한은 각각 4년과 3년으로 하였다. 역시 전기 중등교육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1922년에는 제2차 「조선교육령」을 통해 고등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을 5년으로, 여자고등보통학교의 경우는 3∼5년으로 확대하였고, 이어 1938년의 제3차 「조선교육령」으로 고등보통학교는 중학교로, 그리고 여자고등보통학교는 고등여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1924년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에는 2년 과정의 예과를 두어 대학입학 준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처럼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는 다양한 명칭의 중등교육이 실시되었으나 전기 중등교육과 후기 중등교육이 완전히 분리된 상태는 아니었다.

따라서 중학교, 고등학교,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고등여학교 등 다양한 명칭의 중등교육 기관에서 3년 혹은 4년의 과정을 이수한 후 추가로 이수하는 예과나 고등과, 경성제국대학의 예과 등이 현재의 일반 인문계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의 각종 전문학교는 교육내용과 수준으로 볼 때 현재의 각종 실업계 고등학교와 특수목적고등학교, 그리고 특성화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중등교육 단계에는 다양한 외국어학교가 있었으며 교육연한이 3년∼5년 정도로 다양하였으며, 3년이 기본 과정 이후 연구과정을 별도로 두는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외국어학교에서의 3년 이후 과정이나 연구과정은 후기 중등교육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1945년∼1960년의 고등학교

광복 이후 미군정 하에서의 교육개혁은 기본적으로 일본식 복선형 학제의 미국식 단선형 학제로의 개편을 지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복잡하던 중등교육이 점차 단순화되는 과정을 밟아 나갔다. 1946년 9월 신학기부터 채택된 신학제에 따르면 중등교육은 3년제의 중학교와 6년제의 고등중학교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고등중학교의 전기 3년은 중등과, 그리고 후기 3년은 고등과로 불렀다. 실업고등학교 또한 고등중학교와 동일하게 6년 과정이었고, 후기 중등교육 수준이었던 사범학교는 3년 과정이었다.

정부수립 후인 1949년에 「교육법」이 제정 · 공포되었고, 이 법에서는 중등교육을 4년제의 중학교와 3년제의 고등학교에서 담당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학제는 갑자기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실시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는 1951년 3월 20일자로 「교육법」을 개정하였다. 개정 「교육법」에 따라 중등교육제도는 3년제의 중학교와 3년제의 고등학교로 변경되었다. 그리하여 1951년 9월부터 전격적으로 실시되었다.

광복 이후로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의 10년 간 고등학교 학생 수는 대폭 증가하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미분리로 인해 고등학교 학생 수의 정확한 증가 규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1945년에 80,828명 규모였던 전체 중학생 수가 1950년 전쟁 발발 직전에 380,829명으로 증가한 것을 보면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인구의 팽창 경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역사에서 이 기간은 보통 '교수요목기'로 부른다. 미군정 하에서 1946년 9월에 발표한 교수요목에 따라 과목별 교과서가 편찬되고 학교교육이 이루어진 시기였기 때문이다. 고급중학교 4, 5, 6학년 교과과정표를 보면 필수과목으로는 국어, 사회생활, 수학, 과학, 체육 · 보건, 외국어가 부과되었고, 선택과목으로는 국어, 사회생활, 수학, 과학, 외국어, 음악, 미술, 심리, 실업 과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은 1954년에 정부가 최초로 각급 학교의 '교육과정 시간배당 기준령'을 공포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1954년의 '교육과정 시간배당 기준령'에 이어 1955년에는 문교부령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정식으로 공포되어 각 교과의 목적, 지도방침, 지도내용을 명료하게 하였다. 당시 발표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두드러진 특징은 우선, 단선형 학제의 특징을 교육과정에 구현하기 위하여 인문계와 실업계 학교를 구분하지 않고 계열에 관계없이 단일 교육과정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필수교과와 함께 다양한 선택교과를 두어 학생들 각자의 적성 및 취미 등에 따라 교과목을 선택하여 이수할 수 있는 융통성을 부여하였다. 선택교과를 보면 국어(2), 사회(세계사, 지리), 수학(해석, 기하), 과학(물리, 화학, 생물, 지학), 교련, 철학 · 교육, 체육, 음악, 미술, 외국어(영어, 독일어, 불란서어, 중국어), 전문과정(실업 기타 전문에 관한 교과) 등 매우 다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종전과 전후 복구 과정 속에서도 고등학교 교육의 양적 성장은 지속되었으나 이전 시기에 비해 크게 둔화되었다. 1955년에 311개였던 인문고등학교가 1960년에는 357개로 증가하였고, 학생수는 141,702명에서 164,492명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1961년∼1980년의 고등학교

1960년대에 있었던 고등학교 교육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제2차 교육과정의 시행과 국민교육헌장의 반포가 가져온 교육적 변화였다. 박정희정권은 1963년 초에 고등학교 및 실업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공포하였고, 1969년에 이를 부분 개정하여 1970년부터 시행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를 제2차 교육과정기로 부른다. 생활중심 교육과정이라는 성격을 지녔던 제2차 교육과정은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과 진학하지 않고 취업하는 학생을 위해서 별도의 구별된 교육과정을 제시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계열의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이수해야 할 교과목, 인문과정을 선택하는 학생이 이수할 교과목, 자연과정을 선택하는 학생이 이수할 교과목, 그리고 직업과정을 선택하는 학생이 이수할 교과목으로 구분하여 제시되었다.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1학년 수료 후 인문 혹은 자연 계열을 선택하였으나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1학년에서부터 전문교과를 이수하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실업교과를 전 교과의 10% 이상 가르쳐야 하는 반면,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는 30% 이상을 과하도록 규정하였다.

제2차 교육과정의 또 다른 특징은 학년제가 아니라 단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가는 교육과정을 통해 고등학교 3년 간에 이수해야 할 교과별 단위 기준을 제시하고, 구체적으로 어느 학년에 어떤 과목을 어느 정도 비중을 두어 가르칠 지는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였다.

1968년 12월에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은 고등학교 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교육과정에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는 국민교육헌장의 이념을 교육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1969년 9월에 '교육과정령 중 개정령'을 공포하였고, 1970년 3월부터 시행하였다.

종전의 ‘반공도덕’ 과목이 '반공 및 국민윤리'로 변경되고 이수 단위도 4단위에서 6단위로 늘렸다. '교련'이 하나의 독립 영역으로 설정되어 국방교육을 고등학교 단계에서부터 강조하는 등 국민교육헌장이 지닌 민족주의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변혁을 시도하였다.

1960년대에도 고등학교의 양적 성장은 계속되었다. 1960년데 357개였던 인문계 고등학교 숫자가 1962년에는 338개교로 일시 감소하였으나 1965년에는 389개교, 그리고 1970년에는 408개교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학생수는 1960년에 164,492명이었던 것이 1965년에 254,095명, 1970년에 315,367명으로 증가하였다.

이 시기에는 특히 여학생 비율의 확대가 두드러졌다. 1955년에 전체 고등학생의 28.5%였던 여학생 비율이 1960년에 35.4%, 그리고 1965년에는 42.3%, 1970년에는 44.9%로 대폭 증가함으로써 여성의 고등학교 교육기회 확대가 이 시기에 크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70년 당시 전체 고등학교에서 차지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의 비율이 45.9%로서 실업계 고등학교의 54.1%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상태였다. 이것은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2차 산업분야에서 기초 직업인력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특히 1963년에 「산업교육진흥법」이 제정 · 공포되면서 실업계 고등학교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1960년대에 있었던 고등학교 교육제도에서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이른바 종합고등학교의 등장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의 중등교육 개혁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1956년에 평택고등학교를 종합고등학교로 시범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1960년대 후반까지 60개 고등학교가 종합고등학교로 체제전환을 하였고 1973년에는 213개에 이르렀다.

학생들의 진로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한 고등학교 안에 공업과정, 농업과정, 상업과정 및 진학과정 등 다양한 과정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그 취지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현실 여건의 미비, 학부모들의 부정적 인식 등으로 인해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1972년에 있었던 10월 유신의 선포는 고등학교 교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선 교육과정의 개혁이 이루어졌다. 1973년 12월에 고등학교 제3차 교육과정이 공포되었다. 이른바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 정치적으로는 유신 과업의 추진을, 사회적으로는 산업기술인력의 양성을,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지향하였으나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학습내용의 과다, 난해한 교육내용, 지나친 분과교육, 기초교육의 소홀, 전인교육의 미흡 등이 특히 심각하였다.

1970년대는 고등학교 교육의 양적 성장이 특히 두드러진 시기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1970년에 408개교였던 것이 1975년에는 673개교, 그리고 1980년에는 748개교로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학생수에 있어서도 315,367명이었던 것이 1975년에는 648,149명으로, 그리고 1980년에는 932,605명으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다.

고등학교,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의 성장을 가져온 직접적 배경은 1974학년도부터 시행된 고교평준화를 위한 학군제 입시제도였다. 1969∼1971년 사이에 단행된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는 중학생 인구의 팽창을 가져왔고, 이는 결국 고등학교 입시 과열을 초래하였다.

이로 인한 교육적, 사회적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1975년에는 인천, 광주, 대구 지역을 대상으로 학군별 추첨에 의한 고등학교 배정을 핵심으로 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로 인해 인문계 고등학교의 증설과 고등학생 인구의 팽창이 초래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1974년에는 또한 고등학교 미진학자와 취업 청소년에게 균등한 교육기회를 부여하기 위하여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신설하였다. 1980년 당시 전체 고등학교에서 인문계 고등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55.3%로서 실업계 고등학교보다 많은 상태였다. 1970년대와는 다른 모습으로서 경제발전에 따라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가 확대됨으로써 나타난 현상이었다.

1981년 이후의 고등학교

군부독재의 강화 속에 교육의 민주화를 지향한 변혁 운동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는 고등학교 교육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0년 7월 30일에 '학교교육 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대책'을 발표하여 입시위주의 부정적 교육관행을 일소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있기는 하였지만 학부모들의 교육열이라는 큰 벽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즉, 입시제도의 개혁을 통한 교육정상화의 시도라고 하는 반복적 처방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학원의 민주화, 자율화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여 1983년부터 고등학생의 교복 및 두발의 자율화가 이루어졌고, 1983년에 설립된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시작으로 과학, 외국어, 예체능 분야에서 다양한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이 이루어졌다. 이들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은 고등학교 평준화정책의 지속에 따라 사회 일부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영재교육에 대한 요구를 반영한 결과였다.

정치사회적 변화를 반영하여 1981년 12월에는 제4차 교육과정이 공포되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1984년 3월부터(국민윤리와 국사는 1982년 3월부터) 시행되었다. 제4차 교육과정은 전인교육, 과학교육을 강조하였으나 교육실제에 있어서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학과목을 축소하고, 주당 수업시간을 줄였지만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를 개선할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수 및 학생인구의 팽창은 198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고등학교 수는 1980년의 748개교가 1985년 967개교, 그리고 1990년 1,096개교로 증가하였고, 학생 수는 같은 기간 932,605명에서 1,266,840명, 1,473,165명으로 증가하였다. 중학교 졸업자의 고등학교 진학률이 90%를 넘어섬으로써 고등학교 교육의 보편화를 가져온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전체 고등학교에서 인문계 고등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에 65.1%에 이르렀다. 1988년에 공포된 제5차 교육과정은 기존 교육과정의 기본 방향을 유지한 채 교육과정의 지역화와 효율화를 강조하는 부분적 개정의 성격을 지녔었다.

고등학교 교육의 양적 성장은 1990년이 정점이었다. 즉,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고등학교 인구수, 동시에 고등학교 숫자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부터 실시한 산아제한, 인구억제 정책으로 인한 고등학교 취학 가능인구의 전반적 감소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1992년에 공포된 제6차 교육과정의 특징은 교육과정을 국가수준, 지역수준, 학교수준으로 명료하게 구분함으로써 교육과정의 분권화와 다양화를 더욱 강하게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된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그리고 지식정보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인해 교육체제와 내용의 혁신이 시대적 과제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의 추진을 이끌었던 이념은 세계화와 정보화였다. 1995년 5월 31일에 발표한 이른바 ‘신교육체제 확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5.31 교육개혁방안)은 바로 세계화와 정보화 물결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식의 교육적 답변이었다.

교육 부문에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교육의 경쟁력을 향상시킴으로써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논리 하에 다양한 개혁방안들이 제시되었고, 제시되었던 많은 개혁방안들이 교육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개혁방안을 발표했던 김영상정부를 지나 진보정권이었던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도 이 개혁방안의 이념을 상당부분 계승하였고, 이명박정부에 이르러서는 이 개혁방안의 대부분을 실천하려는 정책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교원 부문에서의 효율성 증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등학교 교원의 정년이 3년 단축되었고, 교육 수요자들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학교운영위원회 제도를 도입하였으며, 교육수요자의 참여확대를 통한 학교운영의 효율성 증진을 위해 자립형사립학교 제도가 제안되었다.

자립형사립학교의 도입, 이를 공립학교에 적용한 자립형공립학교의 운영, 그리고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설립 확대 등은 30년 이상 지속되어온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21세기 정보화 · 세계화 사회를 주도할 경쟁력 있는 인간을 양성하기 위해 교육과정 또한 대폭 개정되었다. 1997년 12월에 공포된 제7차 교육과정은 2002년∼2004년에 걸쳐 고등학교 교육에 순차적으로 적용되었다. 이 교육과정의 핵심 내용은 국민 공통 기본교육과정의 도입과 학생의 선택권 확대, 수준별 교육과정의 도입, 재량활동의 신설, 학습량의 최적화 등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10년이 국민 공통 기본교육기간으로 설정되었고, 이 기간 동안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기본 과목인 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실과(기술, 가정), 체육, 음악, 미술, 외국어(영어) 등 10 과목을 부과하도록 하였다.

제7차 교육과정을 마지막으로 교육과정에 대한 전면적 개정 정책이 폐지되고 수시 개정체제가 도입되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개정은 2007년과 2009년에 비교적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2009년 12월에 공포된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고등학생들은 앞으로 기초(국어, 영어, 수학), 탐구(사회, 과학), 예체능(체육, 예술), 생활교양(기술가정, 제2외국어, 한문, 교양) 등 4개 영역으로 구분된 과목을 이수하게 된다.

이전의 교육과정과의 차이는 국민 공통 기본교육기간의 1년 단축에 따라 고등학교 3년 전체가 선택교육과정으로 운영되며, 교과군과 학년군 개념이 도입되었고, 창의적 체험활동이 강화되었다. 일부 학교의 경우 교육과정 편성의 자율성이 대폭 확대된 것도 특징이다.

내용

고등학교는 교육과정 운영과 학교의 자율성을 기준으로 다음 네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일반고등학교로서 특정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일반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고등학교를 말한다. 둘째는 특수목적고등학교로서 특수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를 말한다.

현재는 과학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계열의 고등학교,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계열의 고등학교와 국제 전문 인재 양성을 위한 국제계열의 고등학교, 예술인 양성을 위한 예술계열의 고등학교와 체육인 양성을 위한 체육계열의 고등학교, 그리고 산업계의 수요에 직접 연계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 등 네 분야의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인정되고 있다.

셋째는 특성화고등학교로서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 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또는 자연현장실습 등 체험위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고등학교를 말한다. 넷째는 교육과정 및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인정한 자율고등학교이다. 자율고등학교에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와 자율형 공립고등학교가 있다.

고등학교의 신입생 선발은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서 행해지고 있다. 전기에 선발하는 고등학교에는 일반고등학교 중 예 · 체능계고등학교, 특수목적고등학교, 특성화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등이 포함된다. 이들 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자는 재학한 중학교가 소재하는 지역의 1개 학교를 선택하여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전형방법은 학교생활기록부 기록과 중학교 장의 추천서, 면접 등에 의한다.

이들 이외의 모든 학교의 신입생 선발은 후기에 이루어진다. 후기 학교의 선발은 주간부, 야간부의 순으로 실시한다. 교육과학기술부령이 정하는 지역의 후기 학교 주간부 신입생 선발은 고등학교 학교군 별로 추첨에 의하여 교육감이 각 고등학교에 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후기학교 야간부 신입생은 당해 학교의 장이 선발한다.

고등학교에는 교장, 교감, 그리고 교사를 두되, 학생수 100명 이하인 학교 또는 학급수 5학급 이하인 학교 중 일정 규모 이하의 학교에는 교감을 두지 아니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고등학교에는 교장과 교감 이외에 3학급까지는 학급마다 교사 3인을, 3학급을 초과할 때에는 1학급이 증가할 때마다 2인 이상의 비율로 이를 더 배치할 수 있다. 고등학교에는 3학급마다 1인 이상의 실업과 담당교사를 둘 수 있으며 이외에도 실기교사, 보건교사, 전문상담교사 및 사서교사를 둘 수 있다. 또한 교원 이외에 학교 운영을 지원하기 위한 직원을 1인 이상 둘 수 있다.

고등학교의 교과는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되어 있다.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국어, 도덕, 사회, 수학, 과학, 기술 · 가정, 체육, 음악, 미술 및 외국어와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교과를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고등학교의 학기는 매학년도를 두 학기로 나누되 제1학기는 3월 1일부터 학교의 수업일수, 휴업일 및 교육과정 운영을 고려하여 학교의 장이 정한 날까지, 제2학기는 제1학기 종료일 다음 날부터 다음 해 2월말일까지로 하고 있다. 자율학교 등에서는 절차를 거쳐 학기를 달리 운영할 수도 있다. 수업일수는 매학년 220일 이상으로 하고 있다.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높이고 지역의 실정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을 창의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고등학교에는 학교운영위원회를 두고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당해 학교의 교원대표, 학부모대표 및 지역사회 인사로 구성하되 위원 수는 학교 규모에 따라 5인 이상 15위 이하로 하도록 하고 있다. 국 · 공립고등학교운영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주요 사항을 심의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1. 학교헌장 및 학칙의 제정 또는 개정에 관한 사항

  2. 학교의 예산안 및 결산에 관한 사항

  3. 학교교육과정의 운영방법에 관한 사항

  4. 교과용도서 및 교육자료의 선정에 관한 사항

  5. 교복, 체육복, 졸업앨범 등 학부모가 경비를 부담하는 사항

  6. 정규학습시간 종료 후 또는 방학기간 중의 교육활동 및 수련활동에 관한 사항

  7. 교육공무원법의 규정에 의한 초빙교원의 추천에 관한 사항

  8. 학교운영지원비의 조성, 운용 및 사용에 관한 사항

  9. 학교급식에 관한 사항

  10. 대학입학 특별전형 중 학교장 추천에 관한 사항

  11. 학교운동부의 구성, 운영에 관한 사항

  12. 학교운영에 대한 제안 및 건의 사항

  13. 기타 대통령령, 시 · 도의 조례로 정하는 사항

사립고등학교의 장은 이 중 제6호의 사항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에 대하여 학교운영위원회의 자문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이외에도 학교운영위원회는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현황

2009년 현재 전국의 고등학교는 총 2,225개교이고 이 중 일반계 고등학교(기존의 인문계고등학교)가 1,534개교로서 68.9%, 전문계 고등학교(특수목적고등학교와 특성화고등학교 등)가 691개교로서 31.1%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계 고등학교의 감소 추세가 2000년대에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일반계 고등학교 1,534개교 중 사립학교는 658개교로서 전체의 42.9%를 차지하고 있어서 아직도 중등교육에서 차지하는 사학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재학생 숫자는 2009년 현재 1,965,792명이고 이중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이 1,484,966명으로 75.5%에 이른다. 고등학교 재학생 숫자는 1990년대 들어서 감소를 시작한 후 2004년까지 지속적으로 감소세가 이어졌으나 이후 약간씩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재직중인 교원은 2009년 현재 총 88,997명이고 이중 여자 교원은 39,736명으로 전체의 44.6%를 차지하고 있다. 1999년에 26.0%, 2004년에 38.3%였던 것을 고려한다면 여자 교원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현재 고등학교 취학률은 92.5%이고, 고등학교 졸업생의 진학률은 81.9%로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의의와 평가

국민 기초교육의 마지막 단계인 고등학교 교육은 광복 직후에 제도화된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2000년대에 들어 고등학교 취학률이 이미 90%를 넘어섰고 대학진학률 또한 80%를 넘어섬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교육은 이미 보편교육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를 지향한 고등학교 교육의 파행적 운영, 평준화 정책에 대한 찬반 논쟁, 특수목적고등학교와 자립형 고등학교의 확대를 둘러싼 보수 진영과 진보진영의 대립 등 고등학교 교육정상화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과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20세기 한국교육사』(이길상, 집문당, 2007)
『한국근현대교육사』(안귀덕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인터넷 자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http://www.kosis.kr)
한국교육개발원 국가교육통계서비스(http://std.kedi.re.kr)

기타 자료

「초중등교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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