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양왕릉 ( )

고려시대사
유적
문화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
이칭
이칭
고려공양왕고릉, 고양 공양왕릉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건립 시기
조선 초기
관련 국가
고려|조선
관련 인물
공양왕|순비 노씨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70년 02월 28일 지정)
소재지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65-1번지 산65-6
내용 요약

고려 공양왕릉(高麗 恭讓王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이다. 공양왕은 이성계 등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조선 건국 직전에 폐위되어 강원도로 추방되었다가 1394년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공양왕릉은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복원 정비를 하면서 왕릉의 상설 제도와 어긋나게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발굴을 통해 능역과 석실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여 복원할 필요가 있다.

정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
건립경위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국왕으로, 1389년 주1, 심덕부(沈德符) 등에 의해 추대되어 왕위에 올랐으나 1391년 폐위되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강원도로 추방되어 원주와 간성 등지를 떠돌다 1394년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살해될 당시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된 상태였으나, 1416년(태종 16) 공양왕으로 추봉(追封)되었다. 무덤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남아 있다.

변천

고려왕릉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관리가 소홀해져 대부분 실전(失傳)되었다가 현종 때 다시 찾아 관리하게 되는데, 공양왕릉도 이때 찾아진 것으로 판단된다.

현종은 공양왕릉이 개성에서 멀리 떨어져 왕씨 후손이 관리하기 어려운 형편을 들어 고양군의 인근 주민이 관리토록 하였으며, 숙종 때에는 왕릉 주변의 분묘를 파내는 조치 등을 통해 관리하였다. 고종은 고려공양왕고릉(高麗恭讓王高陵)이란 표석을 세워 놓았다.

형태와 특징

고려공양왕릉은 공양왕과 순비(順妃) 노씨의 무덤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이다. 현재는 구릉의 경사면에 3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최상단에는 2개의 봉분과 각 1개씩의 주2과 비석이 배치되어 있다.

제2단에는 능역의 중심축 선에 맞추어 장명등(長明燈)이 서 있고, 그 좌우에 크고 작은 2쌍의 주3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장명등 앞에는 주4가 남쪽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앞에 난간 동자주(童子柱)가 놓여 있다.

제3단은 2단보다 3m 정도 낮게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능역의 중심축 선에 맞추어 주5이 세워졌을 것이나 지금은 없어진 상태이다. 이와 같은 주6의 배치는 고려왕릉의 상설 제도(象設制度)에 어긋나는 것이다.

봉분 주위에 배치되는 주7와 봉분 가장자리를 따라 두르는 난간의 주8가 장명등 앞쪽에 배치되어 있음은 후대 보수 때 재배치한 것이다. 매장 주체부는 고려에서 조선 전기까지 이어진 앞트기식 주9로 판단된다.

의의 및 평가

공양왕릉은 경기도 고양시와 강원도 삼척시 두 곳에 남아 있다. 고양의 공양왕릉은 『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으나, 삼척의 공양왕릉(강원도 기념물)은 민간에 구전되어 온 것이다.

한 사람의 무덤이 두 곳에 존재하는 것은 공양왕의 죽음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고려왕조의 마지막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공양왕릉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 두 곳 모두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능역 및 석실의 구조를 이해하고 왕릉의 역사성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여조왕릉등록(麗朝王陵謄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척주지(陟州誌)』

단행본

장경희, 『고려왕릉』(예맥, 2008)

논문

홍영의, 「조선시대 고려 왕릉의 현황과 보존 관리 실태」(『한국중세고고학』 5호, 한국중세고고학회, 2019)
주석
주1

조선 제1대 왕인 태조의 본명.    우리말샘

주2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돌로 사람의 형상을 만든 조형물.    우리말샘

주4

짐승의 형상을 새겨 만든 석물(石物)의 하나. 무덤을 지키게 할 목적으로 무덤 속에 넣거나 무덤 주위에 세운다.    우리말샘

주5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주6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7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주8

들보 위에 세우는 짧은 기둥. 상량(上樑), 오량(五樑), 칠량(七樑) 따위를 받치고 있다.    우리말샘

주9

고분 안의 돌로 된 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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