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통감부시대에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난 운동이다.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으로 일제의 국권침해가 시작되자 각 곳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맞섰으며, 선각자들을 중심으로 각종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여 민족의식의 고취와 국권회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애국계몽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교육구국운동으로, 교육을 통해 민중을 각성시키고 인재를 양성하여 국력을 신장하는 것이 국권회복을 위한 급선무임을 강조하였다. 교육구국운동은 1905년 이후 설립되기 시작한 각종 학회 등 애국계몽단체들의 활동을 통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들은 기관지와 강습회·강연회 등을 통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민족의 자각을 고양시켰다. 이러한 민족교육열의 고조는 전국에 사립학교의 설립을 확산시켰으며, 농촌에서도 신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지방유지들이 사재를 들여 학교를 설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당시 사립학교의 수가 2,300여 개에 달하였음에서도 알 수 있다. 전국 각지의 사립학교들은 학생들에게 민족정신과 애국혼을 불어넣어 주는 교육구국운동의 중심 구실을 하였다.
이들 학교를 중심으로 한 구국운동은 북쪽지방에서 더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특히 평안북도 선천군과 정주군, 평안남도 평양시, 황해도 안악군은 통감부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사찰지구가 되었다.
선천군에서는 기독교계의 신성학교(信聖學校), 정주에서는 이승훈(李昇薰)의 오산학교, 평양에서는 숭실학교와 안창호(安昌浩)의 대성학교, 안악에서는 양산학교(楊山學校) 등이 교육구국운동을 위한 사학의 중심이 되어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안악지방에서는 1906년에 최광옥(崔光玉)·김용제(金庸濟)·최명식(崔明植)·임택권(林澤權) 등이 중심이 되어, 민지계발·산업증진·교육장려 등을 목적으로 하는 면학회(勉學會)를 조직하여 사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김구(金九)는 양산소학교에서 ‘무너져가는 조국을 일으키려면 자녀를 교육시켜라.’, ‘한국인이 배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등을 주제로 한 강연회를 열었으며, 참석한 모든 사람이 삭발하여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안악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교육운동은 황해도 일대의 지도자와 주민들에게 배일사상과 주권회복에 대한 투철한 자각을 불러일으켰으며, 1910년 말에 면학회와 양산학교의 간부들이 모두 붙잡힐 때까지 계속되었다. 평안도의 교육구국운동은 대성학교와 오산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안창호는 「운동가(運動歌)」 등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여러 가지 노래를 지어서 학생들에게 부르도록 하였고, 나라를 구하는 데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군대식으로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1909년 1월에 이토(伊藤博文)의 강권에 못이겨 순종이 평안도로 갔을 때 통감부는 각 학교에 태극기와 일본기를 가지고 나와서 환영할 것을 시달하였으나, 대성학교를 비롯한 사립학교 학생들은 태극기만 가지고 나가서 오히려 일본기를 가지고 나온 관공립학교 학생들을 야유하였다.
이러한 일장기 교게(敎揭)의 반대운동은 개성 한영서원(韓英書院)에서도 일어났으며, 신의주에서는 교원과 학생이 합세하여 일장기를 찢은 사건도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안창호는 1910년 4월에 “간다 간다 나는 간다.”는 「거국가(去國歌)」를 남기고 망명하였으며, 대성학교는 1912년 봄에 폐교당하였다.
1924년에 안창호는 중국 난징(南京)에 동명학원(東明學院)을 설립하여 대성학교에서 못다한 민족성 개조와 교육구국운동을 다시 전개하였다.
한말의 교회와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기독교 신자들이 군대가 되어 일본에 대항할 것을 선동하는 「주의 군대여, 앞으로 나가자」·「다 깨라, 주의 군대여」·「그리스도 군병가」 등의 찬송가를 공공연하게 가르쳤고, 잔 다르크와 워싱턴 등의 자유투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르쳤다.
특히, 1910년 11월에 일본인이 날조하였던 105인사건은 신성학교·숭실학교·신안학교·한영서원 등의 기독교계 학교의 교육구국운동을 막기 위해서 꾸민 음모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이름 있는 지식인과 작가들은 교육구국의 힘을 배양하기 위해서, 민족주체성에 입각한 교과서와 위인전·역사서 등을 저술하였다.
현채(玄采)의 『유년필독(幼年必讀)』, 장지연(張志淵)의 『대한지리(大韓地理)』, 정인평(鄭寅平)의 『대한역사(大韓歷史)』·「애국론(愛國論)」 등의 교과서는 학생들의 애국정신을 일깨워 주는 데 큰 영향과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정규 교과서는 아니었지만 「을지문덕전」·「이순신전」·「동국명장전(東國名將傳)」·「강감찬전」·「최면암전」 등을 비롯하여, 『태서신서(泰西新西)』·『파란말년전사(波蘭末年戰史)』·『미국독립사』·『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세계식민사(世界殖民史)』 등은 사립학교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채택되어, 교육구국운동의 정신적 지주 구실을 하였다.
교육구국운동은 1910년 이후 민족항일기의 독립운동으로 계승, 발전되어 민족사에 하나의 뚜렷한 정신적 좌표를 정립시켰으며, 근대 정신사의 실질적인 주맥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