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농서(海東農書)』의 ‘그ᄂᆡ[稻箸]’나 『농정촬요(農政撮要)』의 ‘도발(稻拔)’은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해동농서』의 ‘도저(稻箸)’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보면 그네는 벼훑이에서 나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지역에 따라 ‘기네 · 베홀깨’ · (이상 인천광역시 덕적), ‘훌챙이 · 치개’(이상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청치기개 · 찌깨 · 첨치’(이상 충청남도 서산), ‘왜홀태’(전라남도 보성), ‘벼훑이’(전북특별자치도 봉동), ‘호리깨’(경상북도 안강), ‘홀태’(전라남도)라고도 한다.
길고 두툼한 각목의 앞 · 뒤쪽에 네개의 다리를 달아 가위다리 모양으로 떠받치게 하고, 빗살처럼 날이 촘촘한 쇠틀을 몸에 끼웠다. 경상남도 영산에서는 작업중에 틀이 흔들리지 않도록 몸 양편에서 줄을 늘이고 발판을 달아서 일하는 사람은 한 발로 발판을 밟는다.
덕적에서는 앞발 중간에 막대를 가로대고, 이에 의지하여 발판을 놓아 사용한다. 날과 날 사이에 볏대를 넣고 훑어내면 나락이 떨어진다. 주로 여자들이 사용하는데, 하루에 벼 여섯가마 정도를 떨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