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곡(金谷)’이라는 지명이 ‘쇳골’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적 주위에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鐵滓)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알려져 왔었다.
이 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의 의병활동과 관련된 무기제조창으로 알려졌다. 1992년국립광주박물관과 한신대학교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어, 조선시대의 제철방식과 철기제조기술에 관한 여러 가지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유적은 무등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뻗은 능선의 북사면으로 해발 약 475m의 고지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산화철(酸化鐵)이 농집되어 있는 미문상화강암이 관입암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암석을 모암으로 해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양 내의 사철을 충분히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무등산 내에서 제철연료용의 목탄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제철로 지점의 발굴에서는 출토된 대형 노벽편(爐壁片)의 계측을 통해 절두원추형(截頭圓錐形)인 제철로의 형태를 밝힐 수 있었다. 노(爐)의 직경은 저부 50cm, 상부 35cm로 추정되었다. 송풍시설은 1개였던 것으로 보이며, 단면 방형 또는 원형의 송풍관이 2개였고, 그 삽입간격이 3∼4cm였다.
또한 제철폐기물이 퇴적된 층위 위에서 정련로와 단조시설(단조로와 단조대석)이 발견되었고, 노저재(爐底滓)와 단조박편(鍛造剝片)들이 검출되어 단조철기의 제작도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 작업장 내에서 제철, 정련, 단조철기제작이라는 일련의 공정을 보여주는 유구가 일괄 확인되어 15∼16세기 제철 및 철기제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준 것이다.
유물 중에는 노벽편(爐壁片)과 유출재(流出滓), 노저재(爐底滓) 등 제철시설과 관련된 것 외에도 철촉(鐵鏃), 추형철기(錐形鐵器), 장식못 등 철제유물과 도자기류·기와류가 다수 출토되었다.
이 유적의 발굴로 김덕령(金德齡) 장군의 의병활동과 관련된다는 역사적 유래가 무기제조장소로 활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일련의 공정 유구와 출토유물로써 입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