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극단 실험극장의 창립단원으로서 기성 연극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며,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과 함께 주요 작품의 주조연급 배우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드라마센터 공연의 <햄릿>·<포기와 베스> 등에서 주조연을 한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실험극장 대표로서 타계할 때까지 연극계의 중심에서 활약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아들을 위하여>·<심판>·<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뚝이> 등이 있다. TBC, KBS 등의 전속탤런트로도 활약했으며 1970년대 후반부터는 연출도 많이 했다.
그 대표작으로는 <휘가로의 결혼>·<오셀로>·<화니> 등이 있다. 운니동에 실험소극장을 열어서 <에쿠우스>(1976년) 공연으로 연극 판도를 크게 변화시켰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장기공연 체제 확립과 연극의 직업화 등이라 하겠다. 그는 연극사상 처음으로 지방연극제를 창설하였다.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직을 역임하였으며, 동아연극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하였다. 운니동의 소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시련을 겪기도 했으나, 만년에는 거의 무대에 서지 않고 단국대학교 등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