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숙(正叔). 호는 후송재(後松齋). 출신지는 의성군 점곡면(點谷面) 사촌리(沙村里). 아버지는 김세우(金世佑).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로 김만겸(金萬謙)의 딸이다. 이황(李滉)을 사숙(私淑)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경전(經傳)과 사서(史書)를 두루 섭렵(涉獵)하고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을 탐독했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에 6년을 시묘(侍墓)하였으며, 생사 간에 예를 다해 섬겼다.
1592년(선조 25) 왜적이 침략하자 의병(義兵)을 일으켜 적을 무찌르고 홍의장군(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의 휘하(麾下)에 들어가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적과 싸워 여러 번 전공을 세웠으며 특히 척후(斥侯)에 능하여 적의 동정을 예견하였으므로 한 번도 패한 일이 없었다.
만년에는 고향에서 자손과 후진을 지도하는 일에 힘을 쏟았으며, 행동은 경(敬)을 주로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맏아들 회(淮)가 과거에 급제하여 하객(賀客)이 많이 찾아왔지만 학업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 급제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근심하였다.
『가계팔조(家誡八條)』를 지어 자손을 훈계하고 퇴계의 예설을 모아 『계문예설(溪門禮說)』을 편찬했다. 저서로는 『후송재문집(後松齋文集)』 2권이 있다. 뒤에 임진전공(壬辰戰功)으로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추증되고, 도담(道潭)의 영모사(永慕祠)에 제향(祭享)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