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현(顯). 1911년 초겨울에 임성구(林聖九)가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했을 때, 창립단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신극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뒤, 혁신단의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1918년 2월 혁신단으로부터 독립하여 취성좌(聚星座)라는 신파극단을 조직하였다. 그의 부인이며 여배우였던 마호정(馬豪政)과 전국을 순회공연하기도 했으나, 마호정이 중도에서 손을 떼자 자기 스스로 계속 취성좌를 끌고 나갔다.
그러나 때마침 밀려오는 연극계의 새로운 물결은 취성좌의 유지를 어렵게 만들었다. 창립된 지 11년 만인 1929년에 취성좌 단원들의 대부분이 새로 창립된 조선연극사(朝鮮硏劇舍)로 가버림으로써 이 극단은 해체되고 말았다.
그뒤, 삼천가극단(三川歌劇團)을 이끌던 권삼천(權三川)과 삼천가극단의 주간이 되었으나 삼천가극단도 흥행에 실패하고 흐지부지됨으로써 연극계를 떠나 지방에서 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