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金炳國)의 손자인 특진관(特進官) 김흥규(金興圭)가 부친, 흥선대원군의 외손녀인 임천 조씨(林川趙氏)가 모친이다. 1899년 황태자의 세마(洗馬)로 시작, 1900년 수원군수(水原郡守), 1902년 동지돈녕원사(同知敦寧院事), 1903년 중추원 의관 및 내부(內部) 지방국장, 1907년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 등을 거쳤다. 같은해 광무사(光武社)에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1908년 대한협회(大韓協會) 평의원으로 추천됐다. 1920년 이도영(李道榮)에게 그림을 배웠고, 1922년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묵란(墨蘭)」으로 입선했다. 1933년 설치된 '조선총독부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의 제1부 위원, 1939년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 이사를 거쳤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다수의 일본군 위문용 부채그림을 조선군사령부 애국부 및 조선총독부에 헌납했다. 1941년 이묵회(以墨會), 이듬해 조선남화연맹전(朝鮮南畵聯盟展)에 참여했다. 해방 이후 1946년 대동한묵회(大同翰墨會)에 참가했고,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부터 서예부 심사위원 및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1957년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 회장, 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고문, 1965년 한국서예가협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1968년 사망했다.
서울시문화상(1956)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