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년(덕종 즉위년) 10월 공부낭중(工部郎中) 유교(柳喬)와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흥종(興宗)의 즉위를 축하하였다.
또한, 표(表)를 올려 압록성(鴨綠城)의 다리를 철훼하고, 붙잡힌 고려의 백성을 돌려보내기를 청하였는데 11월에 거란이 우리의 요청을 따르지 않겠다고 회보하였다. 이에 따라 고려에서는 하정사(賀正使)를 정지하고, 거란 성종(聖宗)의 태평(太平) 연호를 그대로 쓰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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