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지숙(智叔)
시호
충간(忠簡)
이칭
의성군(宜城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453년(단종 1)
본관
의령(宜寧)
주요 관직
좌의정
정의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지숙(智叔). 할아버지는 영의정 남재(南在)이고, 아버지는 병조의랑 남경문(南景文)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음보로 감찰이 되어 부정·지평을 거쳐 의성군(宜城君)에 책봉되었다. 1428년(세종 10) 집의, 이듬해 동부대언이 되었다.

1435년 형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서적을 내려줄 것을 청하여 『음주자치통감(音註資治通鑑)』 1질을 받아왔다. 1439년 대사헌·호조참판을 거쳐 경상도도관찰사로 나갔다. 이어 형조판서·호조판서를 역임하고, 1446년 소헌왕후 심씨가 폐비로 승하하자 자청하여 수릉관(守陵官)이 되었다.

1449년 판원사로 우의정에 임명되었고, 문종이 즉위하자 사직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였다. 1451년(문종 1) 좌의정이 되어 영의정 황보인(皇甫仁)·우의정 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단종을 잘 보필해달라는 문종의 고명(顧命)을 받았으나 1452년 풍질(風疾)로 사직을 청하였다.

1453년(단종 1) 영중추원사로서 사직을 청하였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계유정난 때 사돈인 안평대군(安平大君)과 사위 이우직(李友直) 부자가 죽음을 당하였으나 병으로 화를 면하였다. 죽은 뒤 1489년(성종 20) 손자 승지 남흔(南炘)의 상소로 충간(忠簡)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문종실록(文宗實錄)』
『단종실록(端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백헌집(白軒集)』
『순암문집(順菴文集)』
『대동기문(大東奇聞)』
『추원지(追遠誌)』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