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네’·‘단골에미’·‘당골네’·‘당골에미’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신의 영력으로 무당노릇을 하는 강신무(降神巫)와 달리 세습무(世習巫)인 단골은 영력이 없이 세습에 의하여 사제권을 부여받는 세습무의 일반적 성격을 가진다.
즉, 세습무이기 때문에 강신체험을 거치지 않아 영력이 없으며, 구체적인 신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고, 신단이 없으며, 가무로서 정통 굿을 주관하는 사제이지만 강신무와는 달리 신에게 일방적 기원을 올리는 무당이다.
세습무의 이러한 일반적 특징 외에 단골은 일정지역, 즉 ‘단골판’을 관할하는 사제권을 계승한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단골의 어의와 어원에 관하여 일찍이 단골→단군(檀君)→천(天)의 관계를 제시한 견해와 단골을 ‘丹骨(단골)’로 표기하면서 단골이 단월(檀越)의 와전음(訛傳音)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그러나 무속에 대한 현상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보면, 단골이라는 말은 호남지역에서 세습무를 단골이라 부른다. 동시에, 이 단골무가 또 자기와 일정한 무속적 신앙관계를 맺고 있는 신도를 역시 단골이라 지칭한다.
그리고 호남지방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신도가 ‘단골무당’이라 지칭하는 사례가 있고, 또한 무당이 자기와 신앙관계를 맺은 신도를 ‘단골집’이라 부르는 경우가 있어, 단골이라는 말이 무(巫)와 신도 상호간의 호칭으로 통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일반사회의 상거래에서도 ‘단골집’·‘단골손님’ 등과 같이 단골이라는 호칭이 상호 통용되고 있고, 그것이 일정한 단일거래관계를 의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측면에서 단골의 의미를 추정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독 호남지역에서만 세습무를 단골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또 그 어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 일반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단골의 의미가 단일적 결합관계 내지 단일적 거래관계라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단골무와 신도 전체와의 단일적 결합관계와 관련성이 있는 데서 신도들이 이 무를 통칭 ‘단골’ 또는 ‘단골네’라 하였을 가능성도 일단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단골판’은 단골관계를 맺고 있는 단골의 판도, 곧 단골의 영역이라는 뜻이 된다.
단골들은 무속상의 제도적 조직인 단골판을 가지고 있다. 단골판은 단골이 관할하는 일정 구획으로 단골 하나가 관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단골 상호간에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횡적 조직체계가 확립되어, 단골은 그가 관할하는 단골판 안에서 무속제도상으로 고정된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단골판은 자연촌락 단위 또는 문중 단위로 구획된다. 단골만의 규모는 5, 6개 촌락에서 10개 촌락까지 되며, 보통 500호 내외로부터 크면 1,500호 내외까지 이른다.
단골은 단골판 안에 사는 주민인 신도들의 굿을 의뢰받아 해주고, 주민들은 단골에게 봄과 가을에 보리와 벼를 준다. 이것을 ‘받걷이’ 또는 ‘동냥’이라고 하며, 그 양은 2∼5되 정도이고, 많으면 한말 내외가 된다.
이미 단골이 정해진 단골판에는 다른 단골이 들어가서 굿을 할 수 없으며, 남의 단골판에 들어가 몰래 굿을 하다가 들키게 될 경우는, 무구(巫具)를 빼앗기고 심한 매를 맞는 등 단골 상호간의 규제가 있다. 또한, 단골이 다른 곳으로 이사갈 때는 단골판을 다른 단골에게 팔고 가며, 이사간 곳에서 새로이 단골판을 사야 굿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정에 의하여 본인이 굿을 하지 못할 경우 일정기간을 정하여 다른 단골에게 이 단골판을 전세로 놓는다. 단골판은 단골과 주민 신도 사이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종교판도권에 해당되며, 또한 단골판을 중심으로 사제의 권한이 계승되는 조직체계이다.
이에 비하여 강신무인 명두는 단골판과 같은 무속상의 일정한 관할구역이 없이, 한 지역내에 무제한으로 각자의 능력에 의하여 자신의 판도를 구축한다. 단골판과 같이 신도 전체와의 단일한 결합조직이 존재하지 않고 무의 권한이 세습되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명두는 지역상의 제한이 없이 난립한 유동적이며 개별적인 무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명두가 비록 유동적이며 개인적인 조직을 구비한다고 하지만, 계약적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경기도지역의 ‘명(命)다리’가 대표적이다.
명다리는 대개 귀동자나 허약아들의 장수·건강을 기원하여 어머니들이 자식의 생년월일과 성명·주소 등을 길이 3척 또는 7척 등의 무명에 묵서하여 바친다. 명다리로 단골관계가 성립되며, 무녀와는 수양어머니와 수양아들의 모자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 명다리를 100여장 지닌 무녀도 있어서 사제자의 교단판도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활동범위를 추측하게 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것을 계승받는 신(神)딸은 주요 수입원을 인계받는 셈이다.
단골판과 명다리는 무의 활동범위와 사제권을 상징하는 점에서 흡사한 공통점을 지니지만, 주체인 무가 세습을 하느냐 사제관계로 맺어지느냐에 따라 근본적 차이점을 지닌다.
단골판은 부가계 내 고부세습형에 속하고 명다리는 강신무의 사제계승형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편, 제주도 심방(무당)의 경우도 일정한 신당이나 마을과의 단골관계를 맺고 있는 ‘당맨심방’은 사회와 제도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단골집의 아이가 명다리를 바쳐서 무당과 종교적으로 친자관계를 형성하는 등 다른 지역의 무속과 일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와 신도 상호간의 단일적 거래관계를 두고 단골제도라 하여, 호남 이외의 다른 지역 무 전체까지 확대하는 견해가 있기도 하나, 이 경우 일반적인 상거래와 같이 개별적인 경쟁적 능력에 따르는 거래관계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도적인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 제도적인 단골은 단골판을 중심으로 한 무 상호간의 횡적 조직체계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골의 무계계승은 단골판을 포함한 일체의 무 권한이 부계를 중심으로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즉, 부계계승(父系繼承)의 수직구조로 되어 있다. 여자는 무 권한의 상속자인 남자와 혼인함으로써 부부관계에 의하여 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강신무의 경우 단골판과 같은 무의 관할구역제가 없기 때문에 무가 되는 조건으로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으나, 단골의 경우 무 권한 계승자와의 혼인이 전제된다. 이것은 단골판 없이는 단골이 굿을 할 수 없고, 단골판이 제도상으로 구역제화(區域制化)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무 권한의 계승문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단골판이라는 단골의 제도적 조직과 이에 따르는 무 권한이 단골의 무계계승에 중심이 되며, 단골의 무계계승은 무의 사제권 계승이라고 볼 수 있다. 단골의 세습과정은 무가 되는 과정이면서 무의 학습과정이기도 하다. 단골의 세습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부가계중심이다.
그런데 남편과 시아버지 등 남자들은 여성들의 굿에 ‘잡이’로서 음악반주를 담당하고, 실제 사제자의 구실은 여성이 하기 때문에, 성무과정과 학습과정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통하여 엿볼 수 있다.
단골무계의 여자는 어려서부터 무가(巫歌)를 배우고 시집을 가면 시어머니를 따라 굿판에 다니면서 제상 차리는 법, 춤, 굿절차 등 굿하는 법을 시어머니로부터 익힌다.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뒤 굿의 한 거리를 맡아 하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굿을 도맡아 치르게 된다. 그리하여 사제기능은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로 자연스럽게 인계된다.
이와 같이, 무 권한 일체의 사제권은 부계를 통하여 수직으로 계승되며, 무의 제의기능은 사제권과 관계없이 고부관계라는 여자계통을 통하여 수직으로 전승되고 있는 이원적 구조를 보인다.
현재 단골은 사회적 변화와 인습으로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무계계승이 끊어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무당조직을 바탕으로 판소리와 같은 민속예술이 발생의 배태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