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분지 가운데를 관통하면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신천(新川)을 따라 축조된 많은 고인돌군 중의 한 떼인데 일찍부터 그 존재가 주목되어 여러 차례에 걸쳐 조사가 실시되었다.
1936년 일제 당시의 조사자에 의해 5개의 구(區)로 나뉘어 명명되었다. 각 구는 대략 3개씩의 고인돌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중 1936년에 이미 조사된 이천동 제4구 Ⅰ·Ⅲ 고인돌 일대에 신축건물이 들어섬에 따라 1990년경북대학교박물관이 재발굴 조사에 들어갔다. 이 조사로 새로이 5기의 유구를 더 발견하였다. 또한 일제 때 조사보고문에 실린 Ⅰ 고인돌 주위의 유구배치도의 방향, 치수 등 여러 가지 오류도 확인하였다.
제4구에 속하는 3개의 고인돌 상석(上石)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Ⅰ 고인돌 상석 일대를 조사한 결과, 이미 조사되었던 4기의 유구 외에 북쪽에서 다시 1기의 석곽이 발견되었다. 이 5기의 관 또는 곽은 중앙에 있는 제4호 석곽을 중심으로 □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바닥은 대개 판석(板石)을 여러 개 깔았다. 벽석은 판석을 세워 짠 석관형식과 냇돌을 쌓은 석곽형식이 있다. 하부구조의 크기는 제일 큰 제4호 석곽이 길이 227cm, 너비 55cm, 최대 깊이 75cm일 뿐, 대개는 길이 180cm 내외, 너비 30∼50cm, 깊이 30cm이다.
제5호는 새로 발견된 유구로 제4호 석곽의 묘광에서 50cm 정도 떨어져 있다. 축조방법은 제4호와 동일하며 발견 당시 서쪽 부위에 3매의 개석이 덮여 있었다. 벽체와 묘광 사이의 공간은 냇돌로 채워 보강하였다. 현재 길이 85cm, 폭 33cm, 최대 깊이 35cm이다.
1936년 조사 당시에 발견된 유물로는 마제석검 몇 점과 다수의 마제석촉이 있다.
Ⅲ 고인돌은 대구 부근에서 가장 큰 상석을 갖춘 고인돌로 일찍부터 알려져 왔다. 이 고인돌에 속하는 유구는 원래 2기로 파악되어 있었으나 2기가 더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새로 발견된 2기의 석곽 중 제3호 석곽은 길이 165cm, 폭 40cm, 깊이 35cm이며, 출토유물로는 마제석촉 5점이 있다. 이 밖에 석관 2기가 더 발견되었는데 그 중 A석관에서 관옥 44점이 출토되었다. 이 유구의 크기는 길이 145cm, 폭 45cm, 최대 깊이 50cm이다.
이천동 고인돌의 상석과 노출 조사된 유구는 현재 경북대학교박물관의 야외전시장에 이전, 복원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