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3책. 목활자본. 1666년(현종 7) 그의 증손인 유(瑜)에 의해 편집되고, 1768년(영조 44) 그의 후손인 한극(漢克)·규환(圭煥)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두에 송환기(宋煥箕)의 서가 있다. 규장각 도서와 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오언절구 6수, 칠언절구 7수, 칠언율시 13수, 오언율시 2수, 잡저 2편, 책(策) 2편, 제문 5편, 소 3편, 서(書) 16편과 용성지(龍城誌)·창의사적(彰義事蹟) 등, 권2·3은 부록으로 세계·연보·언행록·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박광옥(朴光玉)·심의겸(沈義謙) 등 당시 명사들과 수창(酬唱)한 것과 기대승(奇大升)·이이(李珥)·조식(曺植) 등에 대한 만시가 섞여 있다. 그밖에 임진왜란 때 읊은 것이 다수 보인다.
잡저에는 개성을 돌아보고 쓴 「유송도록(遊松都錄)」, 지리산을 돌아보고 쓴 「유두류록(遊頭流錄)」이 있다. 책은 이기문제를 논한 「문이기(問理氣)」가 있으며, 제문에는 뚝섬에서 둑제를 거행할 적에 지은 「둑제문(纛祭文)」이 있다.
소에는 이이와 성혼(成渾)을 변호해 올린 「신구소(伸救疏)」와 임진왜란 때 그 의병활동의 보고와 병란을 대처하는 방책을 논한 「계사소(癸巳疏)」 등 3편이 있다. 서간의 「창의격서(倡義檄書)」는 임진왜란 때 삼남의 열읍(列邑)에 의병 분기를 촉구한 강개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밖에 이황(李滉)·기대승·정철(鄭澈) 등에게 보낸 편지가 있고, 같은 의병장인 김천일(金千鎰)·곽재우(郭再祐)·유성룡(柳成龍) 등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전황을 알리고 연합을 모색한 내용들이 보인다. 이어 그가 남원에서 활약한 행적사실을 적은 「용성지」와 그의 의병활동을 적은 「창의사실」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부록에는 저자에 대한 자세한 행적을 적은 글이 많으며, 저자에 관한 여러 기록을 모아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