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여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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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여비고의 진마변삼한분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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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도별도 · 군현도 등 32종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집. 지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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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국의 도별도 · 군현도 등 32종의 지도를 수록한 지도집. 지도첩.
내용

『동여비고(東輿備考)』라는 제목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따온 말로, 동국의 동(東)자와 『여지승람』의 여(輿)자를 취한 것으로 추측된다.또한 ‘비고(備考)’라는 명칭은 ‘『동국여지승람』을 이용하는데 참고가 되는 지도’라는 뜻이다.

『동여비고』의 구성과 체제를 살펴보면, 32여 종의 지도를 60면으로 나누어 한 책에 수록하였다. 가로는 33㎝∼68㎝이고 세로는 37㎝∼42㎝으로 지도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이 책은 일종의 도별도(道別圖)이며 군현도(郡縣圖)이다. 책의 앞부분은 역사 지도이고 그 뒤에는 「도성도」 등의 특수 지역도이나, 대부분 도별도와 군현도로 되어 있다. 본 지도의 편찬 시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17세기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 「도성도」의 내용 중 경희궁(慶熙宮)을 경덕궁(慶德宮)으로, 소의문(昭義門)을 소덕문(昭德門)으로 표기하고 1711년(숙종 37) 북한산에 축조되는 북한산성(北漢山城)의 표시가 없거나 1712년(숙종 38)에 백두산에 세워지는 정계비의 표시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전에 제작되었다.

둘째, 강화도의 돈대(墩臺)가 49개로 되었다는 점이다. 강화도의 돈대는 1678년(숙종 4)에 쌓기 시작하여 1682년(숙종 8)에 49개의 돈대가 완성된 점으로 돈대 완성 이후에 제작되었다.

셋째, 경상도 「북부주현도」에 영양현(英陽縣)이 기록되어 있으나, 순흥부(順興府)는 표시가 없다는 점이다. 영양현은 1681년에 설치되고 순흥부는 세조때 폐지되었다가 1682년에 다시 설치되었다. 위의 세 가지 역사적 사실들로 종합해 보면 1682년(숙종 8)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본도에는 도별총도 다음에 각 군현별 지도가 남부, 중부, 북부 등으로 나뉘어 군현별 중요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이러한 특색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각 군현의 명칭을 적고 붉은 선으로 둘러 읍치(邑治)를 표시하였으며 강은 청색, 산맥은 녹색으로 그렸는데 조선시대 대부분의 고지도에 나타나는 도로 표시가 없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동여비고』가 다른 고지도보다 비교적 빠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둘째, 각 군현의 명칭을 적고 그 군현의 별칭(別稱)을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병기(倂記)하고 있다. 셋째, 각 군현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를 숫자로 적었다. 예를 들면 삭녕의 경우, “경백구십오(京百九十五)”라고 표시하여 삭녕군에서 서울까지의 도리가 195리임을 나타내고 있다.

넷째, 산을 표기하고 그 산의 읍치로부터의 거리와 방향을 기록하였다. 적성현, 감악산의 경우, “동이십(東二十)”이라고 적었는데 이는 읍치로부터 동쪽으로 20리 떨어진 곳에 감악산이 위치한다는 표시이다. 다섯째, 강에는 나룻터인 도(渡), 탄(灘), 진(津) 등이 거의 표시되어 있다.

여섯째, 크고 작은 사원의 명칭이 정성스럽게 기록되어 있어 불교사 연구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일곱째, 역(驛), 원(院)의 위치와 명칭이 일일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교통 제도를 연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여덟째, 각 현의 유명한 명소나 저수지, 저명한 지형 지물 등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아홉째,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있었던 고현(古縣)의 명칭과 위치가 기록되어 있어 각 군현의 역사를 아는 데에도 좋은 자료가 된다. 『동여비고』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동람도」보다는 훨씬 자세하지만, 조선 후기에 제작되는 도별도나 군현도와는 다르게 도별도와 군현도를 복합하여 제작한 복합 군현도(複合郡縣圖)인 셈이다.

참고문헌

「동여비고에 관한 연구」(이상태, 『실학사상연구』 제10·11합집, 모악실학회, 1999)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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