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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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인류
놀이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에서 열두 띠의 동물의 속성에 빗대어 단종의 애사를 풍자한 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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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에서 열두 띠의 동물의 속성에 빗대어 단종의 애사를 풍자한 민속놀이.
내용

강원특별자치도 영월에서 전승된다. 이 놀이의 배경과 내용은 단종의 불운한 일생과 관련되어 있다. 단종은 태어나서 이틀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또 열두 살에 아버지를 잃었으며, 왕위에 오른 지 2년만에 실권을 빼앗겼고, 다시 2년만에 왕위마저 내놓아야 했다.

그 뒤 2년만에 영월로 귀양갔으며, 또 그 뒤 2년만에 세상을 떠난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왕이다. 그 시절 백성들은 그를 기리고 동정하며 안타깝게 여겼다. 한가한 농촌 사랑방에 모여 앉은 촌로들은 단종의 일생을 술자리에서 늘 화제로 삼았고, 그의 띠를 따져보는 데서 이 놀이는 비롯되었다고 한다.

놀이의 내용과 방법은 다음과 같다. 단종은 신유생(辛酉生)이니 닭띠였다. 닭띠인 한 사람이 말하기를 “닭띠의 운명이 그렇게 기구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고 하면서 계유오덕(鷄有五德)을 설파(說破)하고 닭띠자랑을 늘어놓는다.

“정기의관예지덕야(正其衣冠禮之德也 : 의관을 단정히 하는 것은 예의 덕이요), 무위시보신지덕야(無違時報信之德也 : 어김 없이 때를 알리는 것은 믿음의 덕이요), 상호취식인지덕야(相呼取食仁之德也 : 음식을 서로 나누어먹는 것은 어진 덕이요), 상계방위지지덕야(相戒防衛智之德也 : 함께 경계하고 방위함은 지혜의 덕이요), 임전불퇴의지덕야(臨戰不退義之德也 :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음은 의의 덕이다).”라고 하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긍정하며 단종의 운명을 동정한다.

그러자 그는 신이 나서 닭띠자랑을 계속한다. 그 말이 지나치게 장황하고 듣기에 역겨웠던지 소띠인 사람이 “띠는 소띠가 제일이지. 우리는 먹어야 살고, 먹자니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를 짓자니 소의 노력 없이는 할 수 없지. 그뿐인가 소는 우리에게 고기를 먹게 하니 그렇게 고마울 데가 어디 있겠는가.” 한다.

이 때 개띠인 사람이 분연히 말을 받는다. “개는 집을 지켜주는 것은 물론이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기는 개를 따를 동물이 없다. 만약 개의 충성심을 본받는다면 단종도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마땅히 개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말띠인 자도 그냥 있지 않는다. “주인 알아보기야 말이 제일이지. 말은 어떠한 경우도 사람을 밟지 않는 의리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 나라를 지키는 데 말의 공을 생각하면 어찌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한다.

그러자 범띠인 사람이 우습다는 듯이 말참견한다. “그야 동물의 왕자는 호랑이지, 쥐 · 닭 · 소 · 말 따위가 큰소리를 할 수 있느냐.”고 큰소리를 한다.

이 때 용띠인 자가 점잖게 말한다. “하늘에 있어서 우매하고 의리 없는 인간들의 눈에 뜨이지 아니하며, 비를 내려주고 바람을 일으키는 풍운조화(風雲造化)를 이루는 용이 제일이 아니냐?” 이렇게 하여 좌중은 주기(酒氣)가 돌고 흥겨운 분위기가 고조되어간다.

이처럼 농촌에서는 술자리에서 띠 놀이를 자주 하게 되었는데, 동물의 전설이나 시구에 조(調)나 노래곡조를 붙여 부르며 동물 탈을 만들어 쓰게 되었고, 마침내 농악에 맞추어 흥겹게 노는 마당놀이로 발전하여 전승되었다.

이 놀이는 말과 개와 용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민중의 울분을 우화적으로 엮어나간 자연발생적인 민중극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1982년 제16회 단종제(端宗祭) 때부터 띠놀이가 재현되고 있다.

참고문헌

『영월을 찾아서』(박영국, 경성문화사, 1983)
『한국구비문학대계』-영월군편-(김선풍,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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