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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목(馬天牧)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동지총제, 용기시위사절제사, 내시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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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전기 동지총제, 용기시위사절제사, 내시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장흥(長興). 1381년(우왕 7) 산원(散員)에 처음 제수된 뒤 여러 차례 승진하여 태조 초에 대장군(大將軍)이 되었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에는 정안군(靖安君)을 도와 공훈을 세웠고, 1399년(정종 1) 상장군(上將軍)에 승진하였다. 이듬해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다시 정안군의 선봉이 되어 크게 공헌하였다.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3등에 녹훈되면서 전(田) 80결(結), 노비 8구, 은품대(銀品帶) 1요(腰), 표리(表裏) 1감, 말 1필을 하사받았다. 그리고 회령군(會寧君)에 책봉되어 동지총제(同知摠制)로 승진하였다. 마천목에게 내려진 공신 녹권과 교서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1408년 11월에는 회령군 겸 중군총제(會寧君兼中軍摠制)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9월 감순청(監巡廳) 재직 중에 전리(典吏) 고을귀(高乙貴)를 치사(致死)한 사건으로 사헌부의 청죄(請罪)를 받았으나, 태종의 배려로 곡성(谷城) 유배에 그쳤다. 그 해 10월에 십일도도절제사(十一道都節制使)를 설치함에 따라 전라도도절제사에 복직되었다.
1411년 1월 각위절제사(各衛節制使)를 설치하면서 용기시위사절제사(龍騎侍衛司節制使)가 되었고, 이듬해 5월 전라도병마도절제사 판나주목사(全羅道兵馬都節制使判羅州牧使)로 파견되었다. 1414년에 장흥군(長興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1416년에는 도총제(都摠制)에 개수되었다가 곧 전라도병마도절제사로 파견되고, 1418년 2월에 내시위절제사(內侍衛節制使)가 되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 8월 좌우패(左右牌)를 좌우금위(左右禁衛)로 개편하면서 우금위절제사가 되고, 그 달에 장흥군에 제수되었다. 1423년 9월에 판우군도총제부사(判右軍都摠制府事)를 지냈다.
1424년 3월 편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고향인 곡성현으로 내려갔으며, 곧 어머니 상을 치렀다. 1428년 7월장흥군에 복직되었다. 이듬해에 연로를 이유로 치사를 청했으나 도리어 장흥부원군(長興府院君)에 진봉(進封)되었고, 부원군으로서 죽었다. 성품이 광심(廣深)주 01)하고 순근(醇謹)주 02)하며, 무략이 있어 시위와 국방에 공헌이 있었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너그러우면서 마음이 깊음
주02
온순하면서 근신함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한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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