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유대(有大). 서울 출신. 민영직(閔泳稷)의 아들이다.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85년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성균관대사성, 1886년 이조참의, 1888년 홍문관부제학, 1889년 이조참판·보덕(輔德), 1890년 규장각직제학, 경상·전라도 관찰사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891년 전라도관찰사로서 일본 어선이 건입포(建入浦)에 침입하여 그 곳 섬사람 16명을 살상한 사건을 계기로, 왜구침입에 대한 철저한 금제책(禁制策)을 강구할 것을 조정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1890년 한성부판윤으로 있다가 경상도관찰사로 전임되었을 때 함창민란(咸昌民亂)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였다. 대한제국이 수립된 이후 궁내부특진관을 지내는 등 조선 말엽 척족 민씨의 한 집안으로 권세가 당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