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선조 때 평안도사(都事)를 지낸 취원당(聚遠堂) 조광익(曺光益)의 효행과 우애를 기리는 비각이 새겨져 있다.
강동구의 ‘江東’이란 평안도 ‘江東縣’에서 비롯되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즉, 취원당의 아우인 지산 조호익(曺好益)은 선조 때 경상도사(慶尙都事) 최황(崔滉)에 반항했다 하여 그의 모함을 받고 평안도 강동 땅으로 유배되었다.
취원당은 그 아우를 못 잊어 평안도사를 자원하여 아우의 귀양지에서 형제가 만났으나 얼마가지 않아 그곳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강동 사람들은 취원당과 지산 형제의 우애에 감복하여 그곳 흙을 싸들고 수천리 길을 걸어 장사에 참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장례가 끝났으므로 싸들고 온 흙으로 묘앞에 둔덕[嶋]을 쌓아 대를 심고 갔는데, 그 뒤 오방리 사람들이 그 정의를 기념하여 ‘江東邱(강동구)’라 부르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