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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朴說)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부승지, 도승지,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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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부승지, 도승지, 공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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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열지(說之). 박의림(朴義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목천현감 박유(朴維)이고, 아버지는 사옹원첨정(司饔院僉正) 박사동(朴思東)이며, 어머니는 박천도사(博川都事) 박전(朴旃)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483년(성종 14)에 생원이 되고, 1489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가 되었다. 이어 정자·저작(著作)·박사(博士)를 역임하고, 1495년(연산군 1) 감찰이 되고, 수찬(修撰)·이조좌랑을 거쳐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을 겸하였다.
1497년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부교리(副校理)가 되고 호조정랑으로 옮겼으며, 1499년 승문원교감(承文院校勘), 장령(掌令) 등을 거쳐 부응교(副應敎)가 되었다. 1500년 직제학 겸 예문관응교(直提學兼藝文館應敎)가 되었고, 1503년 부승지·도승지에 이어 형조·공조참판, 성균관사가 되었다.
1509년(중종 4) 대사헌·도총부도총관(都摠府都摠管)을 거쳐 1510년 예조판서·이조판서에 이르고, 1516년 우찬성(右贊成)이 되었다. 연산군 때 『성종실록』 편찬에 편수관으로 참여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추모함이 쇠하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애와 친구 사이에 신의가 있었다. 묘는 경기도 고양시 다원동에 있다. 시호는 이정(夷靖)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이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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