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언중(彦仲). 박택(朴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정완(朴廷琬)이고, 아버지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박광선(朴光先)이다.
1615년(광해군 7)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다음 해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가 되고 1617년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이조정랑으로 문학(文學)을 겸하였다.
아버지와 형 박종윤(朴宗胤) 등과 함께 정인홍(鄭仁弘)의 심복으로 이이첨(李爾瞻)과 결탁하여 탐학을 일삼았다. 1622년 승지에 올라 관반(館伴: 외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임시 관직)으로 남도에 내려가 음학(淫虐: 색을 탐하고 백성들을 괴롭힘)을 일삼고 인명을 해쳤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국이 바뀌자 삼사의 합계(合啓)로 처형하라는 주장이 완강하여 금부도사를 영남에 보내어 대구 남문 밖에서 참수하자 수백 명의 군중이 칼을 들고 모여들어 시신의 살점을 도려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