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2년(공민왕 1)에 좌부대언(左副代言)이 되었다. 1361년 충주목사(忠州牧使)로 있을 때 홍건적(紅巾賊)이 침입하여 왕이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가게 되자 분수원(焚修院: 지금의 경기도 파주)에 나와 왕을 맞았다.
1365년에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춘성군(春城君)에 봉해졌으나, 신돈(辛旽)이 권문세족(權門世族)을 제거할 때 모함을 받아 춘주(春州: 지금의 春川)로 귀양갔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