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에는 왕의 식사와 대궐 내의 연회(宴會)에 쓰이는 모든 식사 공급에 관한 일을 관장한 사옹원(司饔院) 소용(所用)의 사기 제작을 위해 380명의 사기장이 소속되어 있음이 『경국대전』 공전(工典)에 규정되어 있다.
천천교(淺川巧)의 『분주원보등(分廚院報謄)』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는 경기도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의 사옹원 분원(分院)에 소속되어 사기 제작을 하던 사기장이 총 552명으로 분업화된 가운데 운영해 갔음을 알 수 있다.
사기장의 분업을 보면, 작업 감독을 맡은 변수(邊首)와 성형(成形)을 맡은 조기장(造器匠), 굽 깎는 일을 하는 마조장(磨造匠)과 건조를 맡은 건화장(乾火匠), 제토(製土)를 맡은 수비장(水飛匠)과 연토(鍊土)를 맡은 연장(鍊匠), 수정(修正)을 맡은 참역(站役)과 번조(燔造)를 맡는 화장(火匠), 번조 책임장인 부호수(釜戶首)와 번조 살핌을 맡은 감화장(監火匠), 화공(畫工)인 화청장(畫靑匠)과 유약 조합(釉藥調合)을 맡은 연정(鍊正)과 시유(施釉)를 하는 양수장(養水匠), 제품의 선별을 맡은 파기장(破器匠)과 잡역으로 공초군(工抄軍)·운회군(運灰軍)·허벌군(許伐軍) 등과 사무를 보던 원역(員役)·사령(使令), 그리고 감관(監官)이 있었다.
이처럼 분업화된 가운데에서 사기장들은 일생을 불만 때는 사람, 물레질로만 평생을 지내는 사람도 있어 누구나 달인(達人)의 경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