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통문이란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고지문(告知文)을 말하는데, 특히 조선 말기인 고종조에 들어와서 민중저항이나 임오군란과 같은 대관항쟁(對官抗爭)에 이와 같은 형식의 선전 격문(檄文)이 성행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동학군의 통문 제1호라고 할 수 있는 사발통문을 들 수 있다. 이 사발통문은 1968년 12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고부면 송준섭(宋俊燮)의 집 마루 밑에 70여년 동안 묻혀 있던 족보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 내용은 전봉준(全琫準)을 비롯한 동학 간부 20여명이 서부면 죽산리 송두호(宋斗浩)의 집에 모여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이하 악리(惡吏)들을 제거하며, 이어 전주감영을 함락시키고 서울[京師]로 직향(直向)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각 이(里)의 집강(執綱)을 수신자로 하여 계사년(癸巳年, 1893) 11월에 발의된 이 사발통문은 서명자의 기명(記名)이 동일인의 필적이고, ‘京師로 直向ᄒᆞᆯ事’라는 모의내용이 당시의 정황에 비추어 비사실적이라는 점 등을 들어 그 진위(眞僞)를 문제삼을 수도 있으나, 이를 전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다.
이 사발통문이 진본(眞本)임을 전제로 한다면, 갑오동학운동은 민간의 차원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적인 혁명운동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사발통문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개적 전달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특정 수용자를 목표 대상으로 삼는 일종의 설득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