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사의공(四宜公) 정중호(鄭重鎬), 정중기(鄭重岐), 정중범(鄭重範), 정중락(鄭重洛) 형제가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안채인 수의헌(守宜軒), 사랑채인 사의당, 고방채 그리고 문간채 등 모두 4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강학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건물의 규모를 살펴보면 당호(堂號)로 사용된 사의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이고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왼쪽 2칸은 누마루, 오른쪽 3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수의헌은 맞배지붕에 정면 6칸, 측면 1칸이며 고방채와 문간채는 모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써 역시 맞배지붕이다. 이러한 건물들은 모두 강학공간에 어울리는 소박한 형식을 하고 있고 누마루와 온돌방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으며 고방채는 방앗간, 곳간, 도장방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을 구성한다.
1726년(영조 2년) 삼귀리에 있던 것을 건물이 쇠락하여 1802년(순조 2년)용산리로 이건하였다. 이후 영천댐 건설로 수몰 지역이 되자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