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항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북한 함경북도 웅기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움집터와 움무덤 · 민무늬토기 등이 발굴된 복합유적.
이칭
이칭
웅기굴포리유적
정의
북한 함경북도 웅기군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움집터와 움무덤 · 민무늬토기 등이 발굴된 복합유적.
개설

유적은 두만강 하구에서 서편으로 약 30㎞ 떨어진 해안가의 구릉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1947년 북한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1960년부터 1964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정식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내용

이 유적에서는 구석기시대의 문화층 2개, 신석기시대의 문화층 5개, 청동기시대의 문화층 2개 등 시기를 달리해 퇴적된 9개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구석기시대의 문화층 중 1기층에서는 막사식 주거지의 바닥으로 생각되는 곳에서 외날찍개·칼·석핵·박편 등이 출토되었다. 2기층에서는 2차 떼기수법으로 만든 밀개와 칼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에서는 움집터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조개더미유적의 1기층에서 1기, 2기층에서 4기, 3기층에서 9기, 4기층에서 5기, 5기층에서 2기 등 모두 21기가 조사되었다.

유물로는 1기층에서 빗으로 찍어 넣은 점무늬가 몸통의 윗부분에 들어 있는 납작밑토기가 괭이·화살촉·칼·긁개·어망추·망치 등의 석기, 창·작살·칼·장신구 등의 골기와 함께 출토되었다.

2기층에서는 1기층과 마찬가지로 모두 납작밑의 토기이나 새로이 줄무늬가 들어 있는 것이 출토되고 아가리가 약간 바라진 것이 보인다. 잔과 대접이 새로운 기형으로 만들어진다. 석기와 골기는 대체로 1기층과 유사하나 종류가 약간 증가한다.

3기층에서는 토기의 형태 및 문양이 다양해진다. 능형문·원형문·손톱문·톱날문·와문(渦文) 등이 보이며, 아가리가에 점토띠를 덧붙인 것도 있다. 각암제 석기가 사라지고 대신 흑요석제 석기가 등장하고 있다. 원추형·주산알형의 토제 방추차가 새로이 나타나며 강아지·뱀·여자를 조각한 예술품과 여러 가지의 장신구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4기층에서는 토기의 무늬에 와문이 없어지고 번개무늬가 출현하며 무문토기의 수가 증가한다. 또한 겉면을 붉게 칠한 적색토기가 새로이 등장한다. 대리석으로 만든 팔찌와 용도를 알 수 없는 뼈장식품 등도 출토되었다.

5기층에서는 몸통 윗부분에 어골문을 넣은 것과 아가리에 돋을 무늬를 넣은 것이 출토되었으나 대부분 무문토기들이 발견되었다. 사인석부(斜刃石斧)와 조개껍데기로 만든 반월형석도 등도 새로이 제작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움집터와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유구는 1기층에서 5기, 2기층에서 4기 등 모두 9기의 방형움집터가 조사되었으며, 무덤은 토광묘 2기가 조사되었다.

1호 토광묘는 길이 200㎝, 너비 70㎝, 깊이 20㎝로 내부에는 머리가 서향인 시신이 놓여 있었고 조개목걸이, 바늘·바늘통, 활촉과 창끝이 부장되어 있었다. 2호 토광묘는 길이 250㎝, 너비 120㎝, 길이 50∼60㎝ 규모로 내부에는 북향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유물은 1기층에서 무문토기와 단도마연토기가 대부분 발견되었다. 석기로는 대팻날·끌·살촉이, 골기로는 살촉·바늘통, 토제품으로는 방추차가 출토되었다. 이 밖에 옥으로 만든 구슬, 관옥, 뼈로 만든 피리가 출토되었다.

2기층에서는 1기층에 비해 기벽이 얇고 종류가 다양한 토기가 출토되었다. 시루와 굽접시가 새로이 등장한다.

의의와 평가

북한고고학자들은 이 유적의 구석기 1기를 구석기 중기(10여 만 년 전), 2기를 후기(3만∼4만년 전)로, 신석기 1기층은 서기전 5000년기 말∼4000년기 초, 2기층은 서기전 4000년기 후반기, 3기층은 서기전 3000년기 전반기, 4·5기층은 서기전 2000년기 초로, 청동기시대는 서기전 2000년기 후반기로 편년하였다.

이 유적의 신석기시대 문화는 연해주, 아무르강의 중류지방 문화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한반도 동북지방의 대표적인 문화로 밝혀져 있다. 서포항의 신석기시대인들은 출토된 유물에서 볼 때 농경·어로·수렵에 경제적 기반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망아지·개·여인상이 많이 출토되는 것은 이들이 여인숭배사상과 토테미즘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청동기시대에는 본격적인 농경생활에 접어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낚시바늘·작살·화살촉·창·단검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어로나 수렵에의 의존도 또한 컸다고 보겠다.

참고문헌

「서포항 원시유적 발굴보고」(김용간·서국태, 『고고민속논문집』 1972년 4집, 사회과학출판사)
「웅기 굴포리 서포항 패총의 유물」(김원룡, 『역사학보』 32, 1966)
「조선의구석기문화인 굴포문화에 대하여」(도유호, 『고고민속』 1964년 2호, 사회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에서 구석기시대 유적 발견」(고고학연구실, 『고고민속』 1963년 2호,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동 원시조개무지 유적발굴」(『문화유산』 1962년 6호, 과학원출판사)
「서포항 조개무지 발굴 중간보고」(김용남, 『문화유산』 1961년 3호, 과학원출판사)
집필자
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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