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문식(文式), 호는 통허재(洞虛齋). 아버지는 성호영(成虎英)이며, 어머니는 덕수이씨(德水李氏)로 통덕랑(通德郎) 이동야(李東野)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기질이 있어 3, 4세에 글을 읽었고 5, 6세가 되어서는 연구(聯句)를 해득하였으며, 9세에는 글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고 한다. 특히, 성헌징이 12세에 지은 「수석정기(水石亭記)」는 매우 유명하여 『여지신편(輿地新編)』에도 실려 있다.
15,16세에는 제가(諸家)의 학설을 두루 섭렵하여 노불(老佛)·음양(陰陽)·기문둔갑(奇門遁甲)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였으나, 뒤에 유학에 정진하였다. 성헌징의 저술인 「천도책(天道策)」은 천지조화의 묘를 극론한 대문장이라는 평이 있다.
한편, 성헌징의 행장을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인 권상하(權尙夏)가 찬한 점으로 보아, 성헌징의 학문은 송시열 계통의 노론과 밀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영조 때 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상주의 죽림서원(竹林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통허재문집(洞虛齋文集)』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