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성은 손(孫)씨이며 본관은 월성(月城). 법호는 회당(悔堂), 자(字)는 춘농이다. 경상북도 울릉군 출생. 아버지 윤섭(允燮)과 어머니 김양삼(金良三)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덕상(德祥)이며 규상은 그의 휘(諱)이다. 7세가 되던 해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0세 때에는 한시를 지을 정도로 총명함을 보였다고 한다.
1916년 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 2년간은 한의학을 공부하였다. 1921년 결혼 이후 이듬해 대구 계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학교가 휴교를 하자 동경 유학길에 나섰지만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조선인 학살사건이 발생하자 곧 귀국하였다.
1937년포항죽림사(竹林寺)로 들어가 본격적인 불교 수행길에 나선 그는 이후 여러 사찰을 순례하며 당시의 고승들을 만났고, 한편으로 『법화경(法華經)』과 『고왕경(高王經): 관세음보살구생경(觀世音菩薩求生經)』 등의 경전을 인쇄하여 무상 배포하기도 하였다.
경상북도 달성군 성서면에 마련한 도량에서 100일 정진을 마친 다음날인 1947년 5월 16일 새벽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진각종(眞覺宗)에서는 이 해를 진각기원년(眞覺紀元年)으로 삼고 있다.
깨달음 이후 달성군 성서면 농림촌을 시작으로 경주시 월성군, 포항시 등지의 경상북도 일대에서 교화활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주로 ‘육자진언(六字眞言)’을 염송하는 수행법과 ‘마음 닦는 공부’를 강조하였다.
처음 참회원(懺悔園)이라는 교당 명칭을 사용했다가 이후 ‘교화단체참회원(1948)’ ‘심인불교건국참회원(1951)’ 등으로 바꾸었으며, 1952년 심인당(心印堂)이라는 명칭으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상남북도 지역으로 교화활동을 확대해 나가던 그는 1952년 왕십리에 심인당을 건립하면서 서울지역 교화에 나섰으며, 이듬해 대한불교진각종보살회의 헌법을 제정하고 곧이어 ‘대한불교진각종’이라는 새로운 종파를 탄생시켰다. 이후 진각종의 교세 확장에 힘쓰는 한편, 1957년 법신 비로자나불을 교주로, 육자진언을 본존(本尊), 삼밀관행(三密觀行)을 수행의 기본으로 하는 밀교 교법을 수립하였다. 1958년 한국불교 대표로 제5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 방콕대회에 참가하였다.
대구시 북구 침산동 불승심인당에서 세속 나이 62세, 개종 17년으로 입적하였다. ‘옛날에는 의발(衣鉢)이요, 이제는 심인법(心印法)이라’는 최후의 설법을 남겼다는 그는 특히 불교교육 사업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1949년건국고등공민학교와 1955년 대구 심인중·고등학교를 직접 설립하였으며, 이후에도 진각종은 서울 진선여중·고와 위덕대학교 등을 설립하면서 교육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저술로 『총지법장(總持法藏)』·『응화성전(應化聖典)』·『진각교전(眞覺敎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