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약 2.5m, 너비 약 2∼2.8m의 축성 자취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초기까지 수원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있던 곳으로 현재 약 540m 가량이 남아 있으나 원래의 길이는 약 1.2㎞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의 능인 융릉(隆陵), 정조와 그 왕비의 능인 건릉(健陵)이 자리하고 있다. 이 유적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이 읍성이 세종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둘레는 270보(약 1.2㎞)이고, 성 안에는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읍성이 퇴락되었다고 적혀 있어 사용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뒤 1789년(정조 13)에 양주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을 이곳 현륭원(顯隆園: 지금의 융릉)으로 옮기면서 그 보호구역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옛 터가 상당수 유실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존하는 성터는 융릉의 북쪽 산 정상부에 일부 남아있는데, 한신대학교박물관의 조사 결과 융건릉 능역 내부에서 수원부의 담장으로 추정하였던 부분이 원래 수원고읍성의 성벽임이 확인되었으며, 약 300m 가량의 성벽이 조사되었다.
따라서 수원고읍성은 이곳 북편의 정상부에서 좌우로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서로 좌우를 연결하는 장방형의 성이었으나, 인구의 증가 및 협소한 공간 등의 이유로 성 안의 치소(治所)들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자, 성은 자연히 황폐하여지고 수백년 후에는 현륭원의 축조공사로 그나마 잔존하던 옛 성의 자취들이 유실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