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급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동인 계열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6품계를 하사받은 학자.
이칭
중준(仲峻)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3년(중종 38)
사망 연도
1592년(선조 25)
본관
평산(平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동인 계열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려 6품계를 하사받은 학자.
개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중준(仲峻). 전첨(典籤) 신말평(申末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기묘명현인 신상(申鏛)이고, 아버지는 별검(別檢) 신화국(申華國)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품성이 강직하여 의론이 준엄하였으며, 총명이 남보다 뛰어났고, 특히 사학(史學)에 밝았다고 한다. 1583년(선조 16) 붕당간의 조정을 자임한 병조판서 이이(李珥)에게 불만을 가진 동인계열의 홍혼(洪渾)·우성전(禹性傳)·김응남(金應南)·박근원(朴謹院) 등이 이이·성혼(成渾)·박순(朴淳)의 작은 과실을 사림의 공론으로 내세워 공격하자, 신급은 유학(幼學)의 신분으로서 이를 사악한 논의로 단정하고 이는 사림의 화를 불러 일으킨다고 탄핵하는 소를 올렸다.

이 상소에 대해 선조는 충성으로 나라에 보답한 사기(士氣)의 표상이며, 특히 당시 여진족 니탕개(尼蕩介)의 침입을 격퇴한 친동생 신립(申砬)의 기상과 상통한다는 칭찬의 비답(批答)을 내리고, 6품의 녹을 하사하여 격려하였다.

그 뒤 정권을 장악한 서인의 지도자인 정철(鄭澈)에 의하여 선공감역(繕工監役)에 추천되었으나 거절하고 재야에서 처사(處士)로 생활하였다. 임진왜란 때 적을 피하여 도망하다가 이천에서 왜적을 만나 쫓기자 어머니와 함께 절벽에서 투신하여, 충주에서 전사한 동생에 뒤이어 죽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장암집(丈巖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