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군택(君澤), 호는 죽당(竹堂)·이옹(泥翁). 첨지중추부사 신말주(申末舟)의 7대손이며, 신언식(申彦湜)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신염(申淰)이고, 아버지는 신기한(申起漢)이며, 어머니는 김영국(金英國)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6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지평(司憲府持平)·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1642년에 이조좌랑이 되고, 이듬해 통신사(通信使)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그 뒤 집의(執義)·동부승지·우승지 등을 거쳐, 1650년(효종 1)에는 도승지가 되었다. 이때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대사간을 거쳐 1652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7년 대사간으로 국왕을 능멸하였다 하여 강계에 유배되었다가 천안으로 옮겨졌다.
그 뒤 유배에서 풀려나 1661년(현종 2)에 형조참판이 되었고, 이어 호조·예조의 참판을 역임하였다. 또한 소현세자(昭顯世子)를 따라 심양(瀋陽)에 다녀온 적이 있다. 글씨에 능하였다.
저서로 『죽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