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 아버지는 직장(直長) 안세복(安世復)이다.
음보로 군직에 나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하고, 선조가 8도에 내린 명에 의하여 부적행위(附敵行爲)를 하며 구날(構捏: 억측으로 일을 꾸밈)을 일삼던 왜역관 김덕회(金德澮)·김응관(金應灌)의 목을 베어 행재소에 보냈다.
전주 분조(分朝: 비상 시에 정궁을 떠나 다른 장소에서 국정을 전담하던 임시조정)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9년에 부장(部長)으로 창덕궁을 지켰으며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옥구현감·안동판관 등의 외직을 지내면서 일을 잘 처리하여 함안군수에 승진하고, 1612년(광해군 4)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에 우림장(羽林將), 1618년 첨지중추부사, 1622년 자산군수가 되어 조방장(助防將)을 겸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을 계기로 수령들이 거의 쫓겨났으나 안몽윤만은 홀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의 전부우협장(前部右協將)으로 군량보급에 힘쓰고 서울 안현(鞍峴)싸움에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으로 순양군(順陽君)에 봉해졌다. 이듬해에 숙천부사, 1626년 부총관에 이어 김해부사·중화부사·전라수사 등을 거쳐 1643년 경상우병사가 되고, 1646년 자헌계(資憲階)에 올라 도총관을 겸하였다. 1648년 포도대장, 이듬해에 지중추부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