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진영 ()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만희집』, 『경학지』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경원(景遠)
만희(晩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88년(정조 12)
사망 연도
1860년(철종 11)
본관
제주(濟州)
출생지
전라남도 화순군
정의
조선 후기에, 『만희집』, 『경학지』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경원(景遠), 호는 만희(晩羲). 능주(綾州) 출생. 아버지는 양윤주(梁潤周)이며, 어머니는 진주김씨(晋州金氏)로 김시향(金時香)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생애 및 활동사항

여러 번 향시에 응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다가 1859년(철종 10) 그가 죽기 1년 전인 72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4세에 다른 사람이 글 읽는 것을 듣고 능히 해독하였다고 하며, 6세에는 8괘(八卦)와 6갑(六甲)을 외우고 9세에는 장자방(張子房)과 공명(孔明)의 우열을 논하는 글을 지었다고 한다.

제자백가(諸子百家)와 노불(老佛)의 학설을 섭렵하고, 특히 역(易)을 깊이 연구하여 「대연추책(大衍推策)」을 지었다. 1857년에는 고을 선비들과 함께 서울에 올라와 기묘명현(己卯名賢)인 양팽손(梁彭孫)의 시호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선비들과 향음례(鄕飮禮)를 많이 가졌으며 시작에도 매우 뛰어났다. 최익현(崔益鉉) 등 많은 사림들이 양진영의 시를 찬탄하여 ‘풍아명어좌해(風雅鳴於左海)’라고 평하였다. 저서로는 『만희집(晩羲集)』이 있고, 편서로는 『경학지(經學志)』가 있다.

참고문헌

『만희집(晩羲集)』
집필자
곽신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