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건물.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세종 때 무신 어변당 박곤(朴坤)이 1440년(세종 22)경에 창건하고 무예를 닦던 곳으로, 1814년(순조 14)에 중수하였다.
중수 때 이호윤(李顥潤)이 쓴 〈중수기 重修記〉가 남아 있다. 현재 어변당 주위의 영역이 정화되어 중앙에 충효사(忠孝祠), 그 오른쪽에 유물관, 왼쪽에 어변당이 배치되어 있다.
어변당은 앞에 연못을 두고 그 폭에 맞추어 3칸으로 건축되었는데, 평면은 대청 2칸과 온돌 방 1칸으로 이루어졌다. 대청의 남쪽을 개방하여 측면에서 출입할 수 있게 했다. 건물 앞뒤에는 툇마루를 두었는데, 연못에 접하는 앞쪽에만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둘렀다.
온돌방에 중간설주가 있는 영쌍창(欞雙窓)이 남아 있는 등 옛 법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대청 배면에는 작은 두짝 미닫이 판문을 시설했는데 보기 드문 형식이다. 건물의 구조는 3량가의 민도리집으로 기둥은 모두 원기둥을 사용하였고, 대청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다.
연못 앞에는 박곤이 심었다는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조선 중기의 별당형식을 잘 보여주며, 세부구조와 창 형식에 옛 법식을 가지고 있는 고졸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