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음성(陰城). 조선왕조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宇同)·어을우동(於乙于同)·어우동(於于同), 『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어우동(於于同)·어우동(於宇同), 『송계만록(松溪漫錄)』에는 어우동(於宇同)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에 그녀의 아버지는 지승문원사(知承文院事)를 지낸 박윤창(朴允昌)이다. 어우동은 종실 태강수(泰江守) 이동(李仝)의 아내가 되었는데, 행실이 방탕하여 여러 조관 및 유생들과 관계하였다. 조정에서 알고 그와 관계한 자들을 문초한 것이 수십 명이었다. 결국, 어우동도 풍속을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1480년(성종 11)에 교형에 처해졌다.
『대동시선(大東詩選)』에는 그가 지은 「부여회고(扶餘懷古)」라는 시를 싣고, 『송계만록』의 글을 소개하였는데, “호서(湖西)의 창(娼)으로 농부의 딸이었으나, 단정하지 않아 그 시가 뛰어나나 싣지 않는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