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갈이’ 또는 ‘용의 밭갈이’라고도 한다. 못에 언 얼음이 마치 극젱이(농기구)로 밭을 갈아놓은 듯이 얼음장이 양쪽으로 넘겨져 있어 사람들은 이것을 용의 짓이라 하여 이것을 보고 그해의 풍흉을 점친다.
곧, 그 갈아 젖힌 것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있으면 풍년이 들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운데로 향하여 있으면 흉년이 들며, 또 동서남북이 온통 갈아 젖혀져 있으면 풍년도 흉년도 아니라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권43 연안도호부(延安都護府) 산천조(山川條)에 따르면, “와룡지(臥龍池)는 속명으로 남대지(南大池)라 하는데, 매년 겨울이 되면 못물이 얼어터지매 혹은 세로로, 혹은 가로로 터지니 그 고을사람들이 이것을 용이 밭가는 것이라 하여 이듬해의 풍흉을 점친다. 가로로 갈라지면 풍년이 들고, 세로로 갈라지면 홍수가 지고, 전혀 갈라지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조선 태종 때에 안노생(安魯生)이 이 일을 조정에 보고하니 조정에서는 유사(有司)에 명하여 매년 봄·가을로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11월조에 보면, 충청도 홍주(洪州) 합덕지(合德池)와 밀양(密陽)의 남지(南池)에도 용의 밭갈이로 다음해의 농사일을 징험(徵驗)하는 내용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안악(安岳)의 석통지(石筒池), 함창(咸昌)의 공검지(共儉池) 등에도 이러한 용경풍속이 전한다. 이와 같이 큰 저수지의 못물은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므로 이른바 ‘용경’이라는 점풍은 풍흉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농민들이 해마다 보아온 징험(徵驗 : 경험에 비추어 앎)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