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본채와 초가로 된 사랑채, 신축된 유물보존각 등의 건물과 연못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운림산방은 운림각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 남화(南畵)의 대가이던 소치(小癡)허련(許鍊)이 만년(晩年)에 기거하며 작품을 제작하였던 곳으로, 사랑채인 화실의 당호(堂號)이다. 허련이 49세 때인 1857년(철종 8)에 귀향하여 건립한 것이다.
허련은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칭송되었는데, 20대에 대흥사(大興寺)초의선사(草衣禪師)와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남화의 대가가 되었다. 특히 헌종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으며, 왕실 소장의 고서화(古書畵)를 평하기도 하였다. 허련은 고부 현감(古阜縣監)을 거쳐 무과에 합격하고 관직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 대표작으로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완당선생해천일립상(阮堂先生海天一笠像)」 등이 있고, 『몽연록(夢宴錄)』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