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청우(靑宇). 경상북도 상주 출신. 3·1운동 때 향리 상주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그해 6월 최재화(崔載華)·조성순(趙誠淳)·배승환(裵昇煥)·조태행(趙台行)·이재영(李縡榮) 등 10여명과 무관학교에 보낼 청년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협의하였다.
7월 청년을 데리고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에 입학, 군사교육을 받게 한 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합류하였다. 1923년 1월 상해에서 소집, 개최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에 국민당(國民黨) 대표로 참가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전책을 모색하였다.
그 뒤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데 협력하였다. 1925년 4월 서동일(徐東日)·남형우(南亨祐)·한진산(韓震山) 등과 같이 다물단(多勿團)을 조직하고 극렬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6년 6월 선두자사(先頭者社) 사건에 선도적 임무를 수행하면서 선전용으로 『선도자』를 발간, 홍보하였다. 1927년 4월 비밀리에 귀국하여 군자금모금에 힘쓰다가 과로로 숨졌다.
1977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