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호는 낙보(洛甫). 경상북도 상주 출신. 독립운동가 유관식(柳寬植)의 아들이다.
상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진학, 일제노예교육에 항거하여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투옥되어 퇴학당하였다.
서울로 와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치과에 입학하였다. 1927년 재학시절에 서울에서 신간회(新幹會)가 조직되자 그해 3월 일본 동경에서 조헌영(趙憲泳)·전진한(錢鎭漢) 등 60여명과 같이 신간회 동경지회를 발기, 조직하고 그 간사(총무)에 선임되었다.
1927년 9월에는 각 사상단체를 총망라하여 조선총독부폭압정치반대동맹을 결성하고 항일투쟁을 병행하였다. 그뒤 재동경조선인유학생회(在東京朝鮮人留學生會)를 조직, 그 회장에 선임되어 항일운동을 선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 경시청에 잡혀 3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었다. 30세에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관직에의 유혹을 물리치고 귀향, 민족계몽과 농촌이상사회 구현에 매진하였다.
그 일환으로 함창산업조합(咸昌産業組合)의 책임을 맡아 주야로 농촌부흥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신약한 몸으로 애국계몽운동이나 강연 등에 헌신하다가 졸도, 요양중 죽었다.
1988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