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우 ()

유원우
유원우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동경지회 간사, 재동경조선인유학생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낙보(洛甫)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2년(고종 39)
사망 연도
1938년
본관
풍산(豊山)
출생지
경상북도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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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동경지회 간사, 재동경조선인유학생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호는 낙보(洛甫). 경상북도 상주 출신. 독립운동가 유관식(柳寬植)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상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진학, 일제노예교육에 항거하여 동맹휴학을 주도하다가 투옥되어 퇴학당하였다.

서울로 와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치과에 입학하였다. 1927년 재학시절에 서울에서 신간회(新幹會)가 조직되자 그해 3월 일본 동경에서 조헌영(趙憲泳)·전진한(錢鎭漢) 등 60여명과 같이 신간회 동경지회를 발기, 조직하고 그 간사(총무)에 선임되었다.

1927년 9월에는 각 사상단체를 총망라하여 조선총독부폭압정치반대동맹을 결성하고 항일투쟁을 병행하였다. 그뒤 재동경조선인유학생회(在東京朝鮮人留學生會)를 조직, 그 회장에 선임되어 항일운동을 선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 경시청에 잡혀 3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요시찰 인물로 지목되었다. 30세에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관직에의 유혹을 물리치고 귀향, 민족계몽과 농촌이상사회 구현에 매진하였다.

그 일환으로 함창산업조합(咸昌産業組合)의 책임을 맡아 주야로 농촌부흥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신약한 몸으로 애국계몽운동이나 강연 등에 헌신하다가 졸도, 요양중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88년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한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89)
『조선독립운동』Ⅲ(김정명 편, 原書房, 1967)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국, 1934)
「유원우묘비문」(정재학 찬)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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