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택중(擇仲), 호는 겸재(謙齋). 유계원(柳繼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자공(柳自恭)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유유(柳柔)이며, 어머니는 광흥수(廣興守) 임문재(任文載)의 딸이다.
작은아버지인 전적 유정(柳貞)에게서 수학하였다. 154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승문원부정자·박사를 거쳐 감찰이 되고, 양구현감으로 나아가 백성들을 구휼하고 안집(安集)하여 치적을 쌓았다.
그 뒤 예조정랑을 거쳐 1555년에 성절사를 따라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지평·종부시첨정을 역임하였다. 1557년에는 통례원봉례(通禮院奉禮)로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예절을 교도하였다.
그 뒤 지제교(知製敎)·시강원문학·수찬·사섬시정(司贍寺正)·홍문관교리·장령·사간·부응교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 중 1561년 사간에 재임 중, 어전에서 외척의 전횡을 치죄할 것을 주청하여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뒤 응교·검상·직제학을 역임하면서 시강하기 6년 동안 왕의 예우가 융숭하였다. 1564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부승지에 전임되고, 영흥·여주·파주·부평 부사를 지냈다. 1567년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청렴하여 가세가 어려웠다.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