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응교,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택중(擇仲)
겸재(謙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19년(중종 14)
사망 연도
1578년(선조 11)
본관
진주(晉州)
주요 관직
지제교(知製敎)|시강원문학|장령|사간|응교|직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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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응교, 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택중(擇仲), 호는 겸재(謙齋). 유계원(柳繼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자공(柳自恭)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유유(柳柔)이며, 어머니는 광흥수(廣興守) 임문재(任文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작은아버지인 전적 유정(柳貞)에게서 수학하였다. 154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승문원부정자·박사를 거쳐 감찰이 되고, 양구현감으로 나아가 백성들을 구휼하고 안집(安集)하여 치적을 쌓았다.

그 뒤 예조정랑을 거쳐 1555년에 성절사를 따라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지평·종부시첨정을 역임하였다. 1557년에는 통례원봉례(通禮院奉禮)로 순회세자(順懷世子)의 예절을 교도하였다.

그 뒤 지제교(知製敎)·시강원문학·수찬·사섬시정(司贍寺正)·홍문관교리·장령·사간·부응교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 그 중 1561년 사간에 재임 중, 어전에서 외척의 전횡을 치죄할 것을 주청하여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뒤 응교·검상·직제학을 역임하면서 시강하기 6년 동안 왕의 예우가 융숭하였다. 1564년 형조참의에 제수되었다가 부승지에 전임되고, 영흥·여주·파주·부평 부사를 지냈다. 1567년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청렴하여 가세가 어려웠다. 이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명종실록(明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진주유씨문헌록(晉州柳氏文獻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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