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원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양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선여(善餘)
시호
충장(忠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0년(명종 15)
사망 연도
1592년(선조 25)
본관
칠원(漆原)
주요 관직
양성현감(陽城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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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양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선여(善餘). 할아버지는 우봉현령 윤이(尹伊)이며, 아버지는 호조판서 윤탁연(尹卓然)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후 양성현감(陽城縣監)을 지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의종군하여 경기도관찰사 심대(沈岱)의 명령을 받고 군량(軍糧)을 풍덕(豊德)으로 수송하였다.

심대가 삭녕(朔寧)에서 사민(士民)을 모집하여 수도를 회복하고자할 때 그곳으로 달려가 삭녕군수 장지성(張志誠)과 협력하였다. 그러나 획책 중 왜장 이토[伊東祏兵]에게 탐지, 복병의 기습을 당하여 군수 장지성은 도주하고 윤경원은 관찰사 심대 등과 같이 전사하였다.

조정에서는 전공은 세우지 못하였으나 위국충절을 가상히 여겨 1593년에 증직의 은전을 내렸다. 1796년(정조 20)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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