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 1921년 3월 13일 조선노동공제회 정기총회에서 대표 61명 중 1명으로 선출되었다.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하고 1923년 3월 15일 서울 황옥(黃鈺)의 집에서 황옥으로부터 「조선독립혁명선언서(朝鮮獨立革命宣言書)」 및 「조선총독부 관공리에게」라는 제목하의 격문 200여 매를 교부받아 이를 각 도지사 및 경찰부장에게 우송·배포하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종로 요소에 살포하다 잡혀 1923년 8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27년 5월에는 당시 민족유일당 조직인 신간회(新幹會)에 가담하여 본부의 총무간사를 맡는 한편, 경상북도 지회장을 겸임하였다. 1928년 신간회의 밀양청년회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밀양에 내려갔다가 경찰에 검속되는 등 독립운동에 주력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