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금천(金川) 출신이다. 이명은 이명옥(李溟玉)이다.
어린 시절 사립 한영서원(韓英書院), 개성사립학교, 금천 시변리(市邊里) 소학교, 해주 도립(道立) 잠업전수학교(專修學校)를 졸업했다.
졸업 후 금천군 잠업지도원으로 취업했고, 수안군(遂安郡)에 전근하여 약 1년 간 근무한 뒤 퇴직했다. 1920년 4월 황해도 금천군 호현면(好賢面)에서 살다가 정희도(鄭熙道)의 권유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임시정부 국내정보원에 임명되어 반일선전문건 배포, 한인 관리들에게 독립사상 고양, 독립운동자금 모금, 임시정부 정보원 모집 등 임시정부의 활동을 도왔다.
1920년 동료 정희도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자 만주로 망명했다. 1922년 다시 상해로 이동하여 임시정부가 설립한 무료진료소에서 근무했다. 1923년 소주(蘇州)에 있는 중국 기술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 7월에 졸업했다.
이후 상해에서 흥사단 원동지부 제3반 반장(1933∼1934), 흥사단 원동지부 제4반 반원(1935), 인성학교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1934년 한인애국단에 가담하고, 낙양군관학교(洛陽軍官學校) 한인반 모집원으로 참여해 한인 청년들을 모집했다.
1935년 3월 26일 밀정을 살해한 혐의로 일제 상해 총영사관 경찰에 붙잡혀 국내로 이송되었다. 1936년 4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3년을 언도받고, 1944년 9월 23일 가출옥되었다.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