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주경(周卿). 서울 출신. 이징해(李徵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덕린(李德隣)이다. 아버지는 목사 이영배(李永培)이며, 어머니는 정여량(鄭與良)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남달리 뛰어나 20세를 전후하여 학문의 폭이 넓고 깊었다. 향천에 의하여 주부로 출사하였다가, 1790년(정조 14) 증광문과에 장원하였다. 1792년 홍문관수찬, 이듬해 교리(敎理)를 지내고, 1795년 공조정랑·예문관응교를 역임한 뒤 이듬해 사성을 지냈다.
1802년(순조 2) 승지가 되어서는 조석으로 순조의 곁에서 시종하면서 틈만 있으면 경서를 강의하고, 시무를 논하여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잘된 일은 권장하여 충성을 아끼지 않았다. 순조가 이문회의 인격을 깊이 인식하고 사랑하여 항상 가까운 곳에 두고 하루도 부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혹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반드시 시신을 시켜 기거를 물었다. 풍채가 아름답고 행동이 단아했으며 주대(奏對) 또한 잘하였다. 특히, 전대에 있었던 중요한 문헌을 연구하여 내용을 소상하게 안 뒤에는 차근차근 왕에게 알려주어 치정에 도움이 되게 하였고, 지나간 시대의 사건들을 분석하여 옳고 그른 것을 미리 판정해두었다가 묻는 말에 거침없이 대답하여 조금도 막힘이 없었다.
또한, 백성의 궁곤을 구호하기 위하여 민폐를 없애도록 건의하였고, 바른 말로 직간하여 돌리거나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야직을 할 때는 반드시 인견한 뒤 선온(宣醞)을 하사하여 위로하고, 이야기할 때는 마치 가인들의 상담을 방불하게 하였다. 1820년 이조참판을 지냈다.